일본의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일본의 분명한 사과가 있어야
  • 전주일보
  • 승인 2018.11.0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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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지난달 30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역사적인 대법관 전원합의 재판(주심 김소영 대법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으로부터 선고가 내려졌다. “주문,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라는 한마디였다. 이춘식(94) 씨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2005년 2월 이후 우여곡절을 겪다가 마침내 최종 판결이 났다. 당시에 함께 소송에 참여했던 여운택, 김규수, 신천수 씨는 재판 도중에 사망하고 이 씨 혼자 남아 기쁨을 누렸다.

그날의 대법원판결은 이춘식 씨 한 사람의 손해배상에 국한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본의 징용 피해자는 아직도 20만 명을 헤아릴 만큼 많고, 정신대 등 많은 피해자가 있다. 쿠데타로 집권한 친일파 박정희가 1965년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미봉하고 국교를 정상화한 ‘부실한 과거청산’의 후유증이 53년 만에 수면 위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판결문에는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말했다. 즉 일본의 식민지배와 강제동원은 불법이므로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일본은 이 판결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한일협정 당시에 한국정부에 준 경제협력자금(3억 달러 등)이 한국 국민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이베는 여태‘징용공’이라던 용어를 바꾸어서 ‘한국에서 온 노동자’라고 표현하며 그들에 대한 배상은 한국 정부가 하기로 ‘청구권협정’에 명시했다고 주장했다. ‘징용(徵用)’이라는 말 자체가 강제로 징발하여 부려먹었음을 나타내므로 슬그머니 말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한일 관계 악화를 들먹여 한국정부를 협박하는 눈치다. 그러나 대법원은 “두 내용이 법적인 대가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청구권협정에는 경제협력자금의 구체적인 명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본 정부가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 징용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한 것을 보면 청구권협정에 손해배상 청구권이 포함됐다고 보기 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일방 당사자인 일본 정부가 불법행위의 존재 및 그에 대한 배상책임의 존재를 부인하는 마당에, 피해자 측인 대한민국 정부가 스스로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까지도 포함된 내용으로 청구권협정을 체결하였다고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또 조선이 합법적인 조약에 의해 일본과 합방된 상태에서 전시국민동원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자국민을 동원한 것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논리를 편다. 일본이 조선 왕실을 겁박하여 강제로 체결한 ‘합방조약’이 ‘합법적인 조약’이었고, 그 당시에 한 나라의 국민을 전시에 동원한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참으로 뻔뻔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이다. 이런 나라가 일본이다.

1951년 9월 8일,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미국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끝맺는 평화조약을 통하여 종전을 선언한다. 그때 우리나라와 북한, 중국 등은 이 조약에 참여하지 못했다. 미국은 일본의 꾐수에 빠져 비상식적으로 관대한 조약을 맺었다. 패망국 일본을 부흥시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냉전체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조급하고 부실한 전후 처리로 한·일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역사의 페이지가 넘겨진 것이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는 김종필과 함께 어떻게든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생각으로 1965년 현물 포함 3억 달러의 경제협력 자금을 받고 한일기본조약과 한일 청구권 협정을 마무리하려 하였다. 이때 국내에서는 한일회담 자체를 반대하며 일본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대규모 반대시위가 열리는 등 여론이 나빠지자, 김종필과 일본의 오히라가 긴밀히 회동하여 2억 달러의 유상 원조와 차관 1억 달러로 매듭하는 메모를 주고받아 회담을 억지로 마무리 했다. 그때도 일본은 한국에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은 한결같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고 두 나라가 정상적인 조약에 의하여 한 나라로 합쳐진 것이므로 전시에 국민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논리를 펴고 있다. 군대의 힘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나라를 빼앗고서도 정상적인 절차에 의하여 합친 것이라고 우기는 그들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 불법성 여부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한·일 양국에 요구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이 강요하는 아시아 정책에 밀려 국교를 정상화하고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양국관계가 이어져 왔다. 이제는 미지근한 관계를 청산해야 할 때가 되었다. 지금 박정희 시대와 그 잔당 정권의 시대가 청산되듯, 한일관계도 분명하게 청산돼야 한다. 진심으로 그동안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여 참회하고 청산해야 두 나라는 진정한 선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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