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가을, 씁쓸한 시민의식
멋진 가을, 씁쓸한 시민의식
  • 전주일보
  • 승인 2018.10.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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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날씨가 변덕을 부린 27일 오전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 세계발효식품엑스포를 보러 갔다. 목적은 황석어젓을 사고 쓸만한 소스 종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도 검색을 해보니 자전거로 8.9㎞, 37분이라고 한다. 배낭에 카메라를 넣고 비닐봉지도 챙겼다. 효자동 4가에서 천잠로를 따라 온고을로를 만나기 전까진 싸늘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기분이 퍽 좋았다. 황금 비가 내리듯 샛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날리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자전거를 타고 나온 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천잠로에서 황방산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서 얼마쯤 갔을 때, 갑자기 인도에 세워놓은 승용차에 길이 막혔다. 좁은 인도에 중형, 대형 승용차 5대가 인도를 완전히 막고 세워져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지나갈 수도 없고 걸어서 지나갈 수도 없이 완전히 막았다. 도로에는 차들이 씽씽 달리고 인도는 막혀 갈 수 없는 몹쓸 경우를 당했다. 궁리하다가 신호가 잠시 끊겨 차들이 오지 않는 틈에 차도로 들어가 역주행으로 막힌 구간을 넘어갔다.

그러다가 고속으로 달려드는 차량을 만났다면 그냥 황천길로 들어섰을 것이다. 어렵게 막힌 길을 지나가서 자전거에 타려는데 차도에 전주시의 주차단속 차량이 비상등을 깜박이고 서 있다. 그러니까 주차단속 차량이 뻔히 보는 앞에서 인도에 차량이 무더기로 불법주차했다는 말이 된다. 주차단속 차량을 보자 화가 치밀었다.

선팅으로 차 안이 보이지 않지만, 근무자가 차량 안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량 문을 두드려 보았다. 운전석에서 근무자인 듯 젊은 여자가 나왔다. 기가 막혔다. 빤히 길을 막은 상황을 보면서 달고 있는 주차단속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든 채 방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단속 차량은 뭐 하느라 저런 차들을 그냥 두냐고 물었다. “아시다시피 예식장에 온 하객들이 차를 놓을 자리가 없으니 인도에까지 차를 놓게 되는데, 단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주말에 예식이 많은 날에는 차도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한다.

뭐 자세한 말을 듣지 않아도 짐작은 한다. 시내 예식장마다 주말이면 주차면적이 모자라 인근 지역 주민들이 차량에 몸살을 하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일시적으로 보행자나 자전거 통행에 불편을 주어도 어쩔 수 없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봐주기가 시민의식을 버리는 근본이다. 이런 불법주차 습관이 운전자들에게 아무 데나 주차하고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키우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말단 단속 공무원이 재량으로 인도주차를 허용하는 것은 아닐 터이고 긴말을 해봐야 내 입만 아플 것이므로 “주말이라 해서 인도가 주차장이 될 수는 없지요.”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공권력이 예식장의 이익과 시민 편의 사이에서 어물쩍거리는 광경은 퍽 불쾌했다. 바로 옆에 덕진경찰서가 있고, 주차단속 차량이 버젓이 서 있는 가운데서 불법주차가 이루어지는 게 ‘사람 냄새나는 전주’의 행정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월드컵 경기장을 향하여 달렸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자주 만나는 불쾌한 경험은 자동차가 멀쩡한 주차장을 놔두고 인도나 자전거도로에 주차되어있는 일이다. 몇 걸음만 걸으면 주차면적이 있는데, 상가 바로 앞에 차를 둔다. 어떤 차량은 인도와 자전거도로를 가로질러 완벽하게 막기도 한다. 같은 길로 출퇴근하다 보면 고정적으로 늘 그 자리에 세워두는 차량이 있다. 그런 불법주차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시민의식 속에서 ‘슬로시티’는 의미를 잃는다.

번잡한 예식장 근처를 지나가면 그런 불법주차가 없기를 바라며 달렸지만, 월드컵 경기장까지 가는 도중에 수없이 많은 불법주차를 보았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떨어져 사르륵거리는 낭만의 길을 달리며 기분이 좋아질 즈음이면 으레 불법주차가 길을 막았다. 어떤 차량에는 운전자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들은 길을 막고 있다는 걸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멀뚱히 자전거에서 내려 가까스로 차량을 피해 지나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발효식품엑스포에서 몇가지 물건을 사서 배낭에 넣어 메고 돌아올 때는 반대 차선을 이용했다. 그쪽은 어떤지 궁금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거기도 ‘역시나’였다. 10m 안쪽에 주차공간이 있는데, 가게 앞에 대형차를 떡하니 두었다. 가게 앞 인도의 보도블럭이 내려앉은 걸로 보아 그 차량은 늘 그 자리에 두는 차량 같았다. 자전거로 다니면서 보면 시내 중심가에도 그런 차량이 있다. 비싼 외제차량을 누가 흠집 낼까 걱정하는지 모르지만, 자기 차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불편을 느끼는 걸 전혀 인식하지 않는 ‘못된 시민의식’을 지닌 사람이다.

돌아오면서 여러 번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늘 절감하는 일이지만, 신호를 기다리면서 요즘 운전자들의 잘못된 운전 버릇을 수없이 목격했다. 신호를 지키는 앞차에 경적을 울리며 위반하지 않고 기다리는 걸 탓하거나, 붉은 신호등이 켜졌는데도 앞차 꼬리를 따라가다가 신호를 받고 출발하는 차량과 얽혀서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일도 보았다. 보행자가 신호에 따라 길을 건너고 있는데, 경적을 울려서 보행자를 멈추게 하고 우회전하는 차량, 우측 차로에서 갑자기 신호대기 차량의 앞을 질러 유턴하는 차량까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자동차문화를 보았다.

이런 문화의 근저에는 너무 너그러운 공권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좀 치사하지만, 카파라치 제도를 다시 도입해서라도 시민 질서의식을 높일 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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