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정도 천년의 과제
전라도 정도 천년의 과제
  • 전주일보
  • 승인 2018.10.2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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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지난 18일 전주시 완산구 옛 전라감영 터에서 전라도 정도 천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송하진 전북도 지사와 이용섭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지사 등 광역단체장과 김승수 전주시장을 비롯한 기초단체장 등 1,000명이 참석했다.

전라감영 터가 있는 전주는 조선왕조 500년간 호남과 제주를 아우르는 전국최대의 먹거리 집결지였고 생산지의 중심이었다. 광주(光州)라는 지역은 이름도 없던 시절, 남쪽 전라남도의 중심은 나주였다. 그래서 전국최대의 곡창을 관할하는 수부(首府)를 이씨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 두고 이름을 전주와 나주의 머릿글자를 따서 전라도라고 했다.

농업이 주업이었고 쌀을 모든 거래가치로 삼았던 시대에 전라도는 부(富)의 중심지였다. 고려 시대에 ‘차령 이남의 인물을 중용하지 말라’는 훈요십조가 탄생한 배경도 먹거리 걱정을 하지 않는 지역의 인물들이 권력에 아등바등하지 않는 속성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벼슬하지 않아도 먹을 걱정이 없는데, 층층시하인 권력의 속성을 시답지 않게 여겼을 법하다.

조선왕조에서도 전라도 출신들은 경상도의 아부와 권모술수 정치에 맞서다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음풍농월로 세월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양반 세도정치가 이어진 조선왕조에서 재화의 중심인 호남인에게 큰 권력이 맡겨진 일은 거의 없었다. 안동의 양반 정치가들이 돈과 권력을 다 가지면 왕실을 무력화하기 쉽다는 논리로 호남인의 중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고 한국전쟁과 4.19 혁명으로 민주국가가 기틀을 잡아가는 도중에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면서 전라도는 새로운 불행에 빠졌다. 경상도 중심의 공업발전 정책을 펴면서 호남은 농업생산 지역으로 못 박아 경제의 축을 완벽하게 이동시켜 호남은 ‘땅이나 파먹고 사는’ 지역이 되었다. 오랜 군사독재 기간이 끝났을 때, 동서의 경제력 차이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전라도 정도 천년 행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묵은 역사를 꺼내는 건 뭔가? 지난날 우리도 한때 잘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자위하는 듯한 정도 천년 행사가 어쩐지 측은해 보여서이다. 정권마다 국토균형발전을 약속했지만, 균형의 추는 언제나 동으로 기울었다. 균형은 더욱 무너져서 서쪽은 인구마저 급속도로 줄어드는 게 현실이다.

호남, 특히 전북의 경제력은 참혹할 만큼 무너졌다. 중공업이랍시고 군산에 있던 현대조선이 문을 닫은 데 이어 GM 자동차 군산공장도 문을 닫아 도시 전체가 황폐해지고 말았다. 왜 규모를 줄이려면 먼저 전북의 공장 것을 줄이는지 알 수 없다. 요즘 조선 경기가 살아나서 수주량이 세계 1위를 회복했다는 기사는 있어도, 군산 조선소가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은 없다.

자꾸만 위축되어 숨이 넘어가는 지역경제를 콧구멍이라고 불어서 살려야 하는데, 비벼볼 언턱거리조차 없다. 중앙정부에 비두발괄하면 ‘우는 아이 젖 물리듯’ 자잘한 사업을 주면서 열두 발 생색을 내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새만금사업이라는 이름만 거창한 사업이 있는데, 사실 새만금이 전라북도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앞으로 도움이 될지 알지 못한다. 공연히 알찬 해양사업을 할 수 있는 갯벌만 훼손한 것이라는 지적이 설득력 있다.

유일하게 전주 한옥마을 관광 조성 사업이 조금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현재의 규모로는 어정쩡한, 그저 그런 광광지 일 뿐이다. 그래도 상당수 사람이 거기에 매달려 생계를 유지하고 연계 관광이 이루어져 아마 전북 유일의 성공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이제까지 관광이라면 멋진 경치이거나 고적 등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관광은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보는 이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감동을 주어야 하는 관광사업이다. 어쩌면 전라도 정도 천년을 내세우는 까닭도 복원하는 전라감영과 연계한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관광사업을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본다.

전주시가 전주 구도심 전체를 한옥마을과 전라감영을 연계하여 관광특구로 만들 구상을 한다면 좀 더 과감한 착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계획대로 동문과 서문, 북문도 복원하고 일부 가능한 성벽까지 복원하여 옛 전주 부성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과 연계한 역사문화관광의 명소로 만들어 감동과 휴식을 얻는 관광코스로 만들어야 한다. 찾아온 사람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그 당시의 숨결을 느끼며 감동 속에 잠을 자고 깨어 그 시대를 겪어보는 즐겁고 재미있는 구상을 할 때다.

거기에 덧붙여 임진왜란 때 격전지이던 웅치 전적과 전북의 의병, 역사 속에서 전북인들이 일어섰던 전북의 정신을 되살린다면 그 또한 좋은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견훤이 꿈꾸던 후백제까지 연결하는 또 다른 코스도 구상할 수 있다. 백제의 패망 이후 신라인에 의해 폄하되고 무시되어 온 전북의 역사에는 나라가 어려울 때 항상 민초들이 앞장선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다. 양반들이 아니라 괭이와 호미로 농사짓던 전북과 호남의 백성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는 화급한 상황을 면했다.

전라도 정도 천년은 우리가 스스로 돌아보고 우리가 살길을 찾는 새로운 운동으로 번져야 한다. 우리의 정신과 용기로 앞날을 열어가는 노력이 살길을 찾는다. 전주시의 구상대로 문화와 역사를 몸으로 겪는 멋진 도시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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