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풍요 속에 비쩍 마른 우리 글
가을의 풍요 속에 비쩍 마른 우리 글
  • 전주일보
  • 승인 2018.10.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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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에
김 규 원/ 편집고문

서늘해진 날씨에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지겹던 더위가 갔는가 했더니, 이제는 추위 걱정을 한다. 들판에는 벼가 익어 그야말로 황금 물결을 이루고 감이 붉고 온갖 과일들이 익어 향기롭다. 가을은 맺고 정리하고 거두는 계절이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일을 생각하는 결산과 새로운 마련의 시간이어서 아름답다.

지난 주일에는 한글날이 있었고 국정감사가 시작되고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길에 올랐다. 궂긴 소식으로 김창호 히말라야 원정대장을 비롯한 다섯 사람이 눈사태에 희생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히말라야 고봉 14좌를 무산소 등정했다는 김 대장이 눈 폭풍 속에 희생된 일에 국민 모두 안타까운 마음을 어찌하지 못했다. 이번 희생자까지 히말라야에서 목숨을 버린 산악인이 9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극한상황을 극복하는 성취감에 목숨을 내놓는 이들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인간이 감히 정복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지 싶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9일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여 반포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나는 한글날이 되면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나라의 말을 중국의 문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어려움과 백성들이 한자를 다 알지 못하여 불편함을 느끼는 일을 풀어주기 위하여 한글을 만들었다고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에 적었다.

어려운 한자를 쓰지 않고 뜻을 적을 수 있게 만든 우리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 모두가 최고의 글이라고 찬탄해 마지않는 글자다. 사람의 구강 움직임을 연구하여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이런 글은 세계 어느 문화에서도 볼 수 없는 우수한 글이다. 그런데 한글 창제 당시에도 중국의 문물에 정신을 빼앗긴 학자들이 한글을 ‘언문’이라고 깔보고, 여자들이나 아랫것들이 쓰는 글로 격을 낮추었다. 편하고 쉬운 글을 두고 어려운 한자로 공문서를 만들고 기록하는 일을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계속했다.

그러게 혼을 남의 나라에 바치고 살다가 일본의 침략에 나라를 내주고는 36년간 그들의 압제 속에서 살았다. 창씨 개명으로 조상조차 일본에 바치고 살다가 다시 일본이 망하자 미국에 붙었다. 미국을 떠받들기 위해 우리말을 팽개치고 영어학습에 몰두했다. 각급 학교 교육과정에 국어 시간보다 영어 시간이 훨씬 많고 유치원에서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를 쓰다가 스펠링을 잘 못 쓰면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고, 한글을 쓰다가 맞춤법이 틀리면 그냥 씩- 웃고 만다. 우리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건 부끄럽지 않고 남의 글을 잘 못 쓰면 부끄러워하는 이상한 나라로 변했다. 거리의 간판은 온통 영어와 불어 등 외국어투성이고 한글 간판은 드물다.

이런 부끄러운 현상을 ‘글로벌’ 시대이니 당연하다고 한다. 세계화는 우리 것을 무시하고 버려서 되는 게 아니라, 우리 것을 잘 지키고 사랑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 나를 모르고 내 민족, 내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화라는 덫에 치여 근본조차 팔아먹는 오늘이다. 심지어 행정관서의 공문에도 영문이 수없이 등장한다. 시책 명칭도 간단한 우리말을 두고 이해할 수 없는 영어로 만들어서 한참 설명을 들어야 알 수 있다.

이 행정기관의 영어 병이 번지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권 시절이다. 영어교육을 권장하고 학교 과정을 개편했다. 그때부터 생소한 영어 시책 명이 나돌기 시작하더니, 박근혜 정부에서 더욱 기승을 부렸고 문재인 정부에서도 영어 병은 여전하다. 주민이 참여하는 행사 명칭도 영어로 지어야 멋진 것으로 알고 ‘와일드푸드 축제’ ‘머드 페스티벌’ ‘그린 스쿨 컵 대회’등등 수없이 등장했다.

필자가 수필을 쓰면서 순우리말 단어를 가끔 쓴다. 우리가 그동안 잘 쓰지 않아서 생소한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처음에는 여러 사람에게서 “왜 어려운 단어를 써서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하냐?”라고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이고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아울러 그렇게라도 우리말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있다.

지금 우리가 거의 쓰지 않고 있는 우리말 단어만도 몇만 개가 있다. 그 단어 가운데는 한자 말이나 영어보다 훨씬 의미가 분명하고 예쁜 것이 많다. 단 한 단어로 몇 줄에 해당하는 설명을 함축하는 단어가 있고 우리의 고향 같은 추억어린 단어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말을 찾고 사용하는 일에는 관심 없고 남의 나라말을 꾸어다 쓰는 일에 정신을 팔다 보면 우리의 혼까지 뺏긴다.

지난날 중국의 한자에 목매어 살다가 일본에 나라를 송두리째 내주고 일본식 성씨까지 만들어 조상을 팔아먹었으면 정신 차려야 한다. ‘글로벌’ 찾다가 내 혼을 잊어버리면 언젠가 우리 후손들이 남의 나라에 슬그머니 흡수되어버릴 수도 있다. 앞으로 세계화가 되면 민족이니 나라니 구분도 없어질 것이라는 황망한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 유대민족을 보면 그들이 그렇게 긴 세월 동안 갖은 박해와 멸시를 받으며 버텨온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민족의 자존심은 그렇게 헙수룩히 팔아넘길 수 없다. 아마 인류가 멸망하는 그 시기까지도 민족이라는 이름은 존속할 것이다.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지켜야 나라와 민족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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