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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메아리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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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04  18: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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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순 필/수필가

무더운 여름이면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도, 땀으로 멱 감은 듯 젖은 몸으로 열 일 마다하지 않던 내 어머니의 모습이 또렷이 떠오른다.

평소에 긴 머리에 동백기름을 발라 틀어 올려 뒷머리에 비녀를 꽂은 단아한 차림이었다. 곱게 단장한 얼굴과 쪽진 머리는 대갓집 마님처럼 고아했다. 고운 모습도 바쁜 일거리에 묻히다 보면, 땀범벅에 곱게 빗은 머리카락이 비어져 나와 바람에 나부꼈다.

단아한 몸가짐의 위엄과 정숙함도 헝클어진 모습이기가 일쑤였다. 당신 슬하에 팔 남매를 건사하고 가르치기 위해 고단한 삶을 짊어질 수밖에 없어 치러야 할 희생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나를 반기셨다. “아이고 내 새끼.”라며 날 안아줄 때면 엄마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이 일부는 굵은 삼베 치마에 스며 들어가고, 몇 방울은 내 얼굴에 떨어졌다. 그럴 때 얼른 치마폭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꼭 안아주셨다.

그 치마 속은 언제나 당신 냄새의 비밀장소 같은 안온한 곳이었다. 땀 냄새나는 치마 속은 내 그리움의 간절한 샘물이었다. 당신의 살 냄새가 좋아서 코를 킁킁거리며 살았던 시절은 내 삶에 평화와 쉼터가 있던 천국이었다. 지금까지도 문득 되살아나는 당신의 따뜻한 온기와 살가운 음성이 들리는 듯 할 때면 그리움이 사무친다.

어느 날, 치맛자락 안에 텃밭의 오이와 빨간 토마토를 따오시던 생각이 난다. 뛰어가 땀에 젖은 젖가슴을 덥석 잡은 기억이 새롭다. “다 큰 것이 무슨 짓이여.” 하시며 젖무덤을 내어 주실 때는 당신 품에 내 영혼을 오래도록 묻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당신의 젖무덤은 내게 유일하고 가슴 뭉클한 장난감이었다. 그때 나와 당신의 얼굴은 온 세상을 비추고도 남을 크고 둥근 해와 보름달이었다.

오 남매의 고명딸로 태어난 당신은 공주처럼 고이 자랐다고 한다. 외삼촌들이 번갈아 볼에 뽀뽀하다 보니 양 볼은 언제나 빨간 사과 같았단다. 사내아이만 있던 집안에 태어난 어린 시절은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한 공주님 같은 삶이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아늑한 어린 시절을 거쳐 곱게만 자란 당신이 시집와서 겪은 고생이 얼마일까? 거친 세파를 헤쳐 가느라 주름진 얼굴이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이면 더욱 그립다.

사과같이 둥근 얼굴도 아니요, 앵두같이 빨간 입술의 특별한 미모의 여인도 아니었다. 유달리 자식에 대해 애착이 강한, 인자하고 정이 많은 분이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며 사셨다. 그런 보람을 거두기도 전에 오십 중반의 나이에 반나절 소풍으로 생을 마쳤다. 벌써 강산이 네 번도 넘게 바뀐 세월이 지났다.

그때의 애달픈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당신은 늘 끌끌거리면서 소화가 안 된다고 했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도 활명수 소화제로 넘겼다. 차츰 소화제의 한계를 넘어서 복통과 매스꺼움이 가시지 않았고 통증은 더 심해졌다. 큰 병원에 가서야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그럴 때를 두고 한 말이지 싶었다. 철없던 시절, 그런 일들이 나에게는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로만 들렸고, 남들에게만 그런 일이 생기는 줄 알았다. 얼마 동안 충격으로 천정이 빙빙 돌고 하늘이 노랗게 보여 현기증으로 고생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베풂이 일상이셨던 당신을 이웃 사람들은 내 일처럼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네 살. 입원을 권유했으나 완강히 거부하여 누구도 이길 재간이 없었다. 강제로 입원이라도 하셨더라면 여한이 없었을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당신에게 아버지는 이름도 모를 단방약으로 병을 다스리느라 약탕기에서는 언제나 약이 끓고 있었다. 약탕기에서 풍겨오는 이상야릇한 약 냄새를 잊을 수 없다. 통증이 심할 때마다 왕진 온 의사 선생님은 대문 밖을 나가며 고개를 좌우로 젓곤 했다.

가족 모두 일터와 학교로 떠나면, 빈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통증을 삭이며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였다. 풍족지 않은 삶의 터널을 건너가며 가족에게 빚을 남겨주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이었으리라. 당신의 보름달 같은 모습은 차차 그믐달이 되어 먼 산 너머로 다시 못 올 길을 그렇게 떠나셨다.

그리운 당신의 얼굴을 그려본다. 갸름한 얼굴에 사랑 가득한 눈과 코를 그렸다. 평소 말을 아끼시는 예쁜 입술도 그렸다. 아담한 귀도 그렸다. 인자하신 눈과 입가의 주름, 잔잔한 미소도 그려보았다. 두 볼에 예쁜 볼연지도 발라드렸다. 땀에 달라붙은 몇 가닥의 머리카락도 그려 넣었다. 가르마로 곱게 빗은 낭자머리도 그려 넣었다.

삶의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당신이 도화지 위로 성큼성큼 나오실 것만 같다. 그리움의 단내 나는 땀방울을 내게 한 움큼 흘려주시던 당신,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시던 모습이 이렇게 무더운 날 더욱 간절하다.

어머니, 당신은 영원히 내 가슴속에 함께하십니다.

 

경력

전북 김제, 교직 39년 명퇴, 에세이스트 · 한국수필 등단, 주부수필 수상, 한국걸스카우트훈련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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