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에서
숲길에서
  • 전주일보
  • 승인 2018.09.20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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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수필가

가끔은 홀로 산책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온전히 빈 몸으로 휘적휘적 두 팔을 흔들며 숲의 향기에 흠뻑 취해서 새들의 정겨운 노래에 귀 기울이고, 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으면 내 그림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나를 부축한다. 때로는 목적지 없이 그냥 하염없이 걸어도 좋지 아니한가? 그냥 걷는 것, 아무 약속이나 예정 없이 그저 걸어 홀가분해질 때까지 걷는다. 그 길에서 만나는 것에 손 내밀어 체온을 느껴보고 그들의 언어를 내 안에 받아들이며 나도 그들 속의 하나로 동화(同化)한다.
나는 가끔 속 시끄러울 때 걷는 길이 있다. 물론 많은 사람이 줄을 잇고 걷는 '지리산의 둘레길'이나 '제주의 올레길' 같이 명성을 얻은 길은 아니다. 하지만, 그 길에는 은행나무 ‘삼순이’, 단풍나무 ‘단풍이’ 그리고 강아지풀 ‘살살이’, 맥문동 ‘까시리’, 구구절절 ‘구절초’ 등 내가 지어준 이름표를 달고 나를 반기는 나무와 풀이 있다. 바로 사선대 강변 오원천을 지나 방수리 장제무림(長堤茂林)까지 왕복 십 리 길이다.

그곳에는 철 따라 피고 지는 자연의 삶이 있다. 봄에는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절정을 이룬다. 또 가을에는 성미산성에서부터 내려오는 단풍이 오원천을 물들이는 풍성함이 있고 다 내려놓고도 넉넉한 겨울이 있다. 장제무림은 이삼백여 년 전 어느 부부가 홍수방지를 위해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룬 곳이라고 전해오는데 오원천변의 경치를 노래한 방수팔경(芳水八景)의 한 곳이다. 그 숲에는 개서어나무, 느티나무, 팽나무가 터줏대감처럼 서 있다. 그밖에 갈참나무 줄사철나무랑 다양한 식물이 어울려 산다. 그런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넉넉해진다. 숲은 한 곳에 발을 묻고 언제까지나 하늘을 이고 서 있는 모든 것을 다 품을 만큼 넓은 넉넉한 품을 지녔다. 어떤 갈등도, 조바심도 묻은 채 온전히 땅에 대한 믿음 하나로 초연하다. 품에 든 모든 것들을 배려할 줄 안다.

그런 숲에도 나름의 질서는 있다. 키 큰 나무, 키 작은 나무, 꽃을 피우는 나무, 그냥 늘 푸른 나무, 단풍 드는 나무들이 저마다 키를 자랑하며 서 있다. 그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떤 야생화는 몇 년째 꽃조차 피우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기도 하다. 언젠가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밀림의 나무들도 한 줄기 햇볕을 더 차지하려고 엄청난 경쟁을 벌인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쉬운 삶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작은 울림이다. 몇 걸음 걷다 보면 족두리풀이, 몇 걸음 걷다 보면 질경이가 활짝 웃으며 반긴다. 꼭 나만을 위해 열린 길이라고 착각하며 오원천을 따라 걷다 보면 장재무림 오솔길에 접어든다. 가을쯤에는 구절초 꽃이 만발한 꽃길을 만나기도 하고 강바람이 먼저 길을 터주기도 한다. 나보다 먼저 숲을 휘돌아 나온 바람의 맨발이 푸르다.

어느 날 숲길을 걷다가 풀잎에 앉아 사랑을 나누는 사마귀 한 쌍과 눈이 마주쳤다. 암사마귀의 두 팔에 허리가 꺾어진 수사마귀의 눈빛이 너무나 애절해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조심스레 둘을 떼어 놓았다. 암놈에게서 알을 받아 부화하면 제 몸을 새끼들의 양식으로 내주는 게 수사마귀의 운명인 것을, 괜히 오지랖 부려 지고한 사랑을 방해한 꼴이 돼버렸다. 그토록 숭고한 사랑이 이루어지는 시간이지만 숲은 조용했다.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한곳에 머물러 보면 안다. 시간이 오래 머문 곳에서는 우리의 시선도 잠시 머물다 간다는 것을. 그렇기에 숲길은 한시도 쉴 새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던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숲은 품에 안은 온갖 것을 너그럽게 보살피며 많은 사연을 생성하고 묻어준다. 숲길은 결코 일부러 땅을 파 헤집고 길을 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숲이 사람의 무게와 몸피를 가늠하여 한 사람의 폭만큼만 내준 길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에게 길을 내주며 가다 보면 혼자서 가도 길과 함께 가는 길이 된다. 내가 가면 내가 길들이는 길이다. 그렇게 가다가 보면 내가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비록 내가 걷는 길은 오래전의 길이 대부분이지만, 길이 없는 숲에 들어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햇살이 먼저 길을 터주기도 한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용케도 길을 찾아내고 반짝이다가 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결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물결을 타고 일렁이는 숲에서 헤매다가 때로는 길을 잃기도 했지만, 결국 길을 찾아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 이치도 그러하지 않던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단지 조금 가까운 길이거나 먼 길일 뿐이다.

가끔은 자연의 생존 주기도 들춰보는 오지랖을 부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바람을 앞세우고 찰랑거리는 햇살 물결에 발을 적시며 타박타박 걸어보자. 그 길에서 혼자이든 동행이든 숲길이 만들어 주는 진정한 내 그림자를 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는 일이 좋든 나쁘든, 외롭고 고달프든 숲길에서는 한 포기 풀이거나 나무일 수밖에 없다. 숲길에서 좋은 소리, 청아한 빛깔, 싱그러운 향기, 푸근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찾는 것은 걷는 자의 몫일 것이다.

돌아보면 외롭고 쓸쓸한 길, 그리움이 전신을 휘감아 사무치는 길, 부끄러움조차 스스럼없이 떠오는 길, 때 묻지 않은 어린 시절 같은 길, 사춘기 같은 아릿한 길을 보물찾기하듯 걷는 것이 산책의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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