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도둑 잡아라”
“세금도둑 잡아라”
  • 전주일보
  • 승인 2018.09.0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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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가을이다. 숨이 턱턱 막혀 사는 일이 고통스럽게 생각되던 그 지긋지긋한 여름이 완전히 물러갔다. 밤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호시절’이 왔다. 이 멋진 계절에 할 일도 많고 바로 눈앞에 다가선 추석은 힘겨운 살림살이를 실감하게 하지만, 이 또한 계절이 주는 선물이다.

상큼한 가을 토요일 아침에 ‘경향신문’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보았다. ‘세금도둑 잡아라’라는 단체의 활동을 소개한 기사였다. “영수증도 없이 쓰이는 ‘깜깜이’ 특수활동비(특활비)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 지난달 국회의 특활비 폐지 발표라는 통쾌한 장면을 이끌어낸 바로 그 단체다. 이후에도 업무추진비, 입법·정책개발비 등 국민들은 듣도 보도 못했던 ‘눈먼 돈’들의 용처를 계속 추궁하며 고삐를 죄고 있다.”라고 이름부터 상쾌한 단체를 소개했다.

‘세금도둑잡아라’는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이며 ‘시민이만드는밝은세상’ 대표인 이영선 신부와 공인회계사, 변호사, 제주대 교수인 하승수 씨가 공동대표이고,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을 펴낸 이상석 씨가 사무총장인 단체다. 단체 이름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이 단체의 활동 목표는 국민이 낸 세금을 공공연히 훔쳐먹는 국회의원과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기구 구성원들을 잡아내고 밝혀 아까운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게 하는 일이다.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대통령에게 수시로 전달되어 사용(私用)되고, 국회와 청와대, 각 부처에서 영수증도 없이 펑펑 쓰인 일이 밝혀졌다. 이 단체는 그러한 예산이 지금은 어떻게 쓰이는지 알아보게 되었고 국회의 특수활동비가 그야말로 줄줄 새고 있음을 알아내서 결국 국회의 특수활동비를 없애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단체는 이름부터 특별하고 재미있지만, 단체의 로고가 아주 멋지다. ‘불도그’의 얼굴을 로고로 삼았다. 다른 개들은 코가 이빨보다 앞에 돌출되어 물었다가도 숨을 쉬려면 놓아야 하지만, 불도그는 코가 뒤로 한참 물러나 있어서 물면 놓지 않는다. 실제 사무총장인 이상석 씨는 순천에 살면서 광주 · 전남 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세금이 잘못 쓰인 곳을 집어내고 소송까지 진행하여 판례를 만들 만큼 지방재정 운용에 대해 철저한 감시를 해왔다. 그런 경험들을 묶어 책으로 낸 것이 ‘내가 낸 세금, 다 어디로 갔을까?’이다.

경향신문의 기사에서 이상석 사무총장은 “나랏돈, 정부 돈을 자기 쌈짓돈으로 생각하는 행정관료, 정치인 등 모두가 세금도둑입니다. 지방은 더욱 심각해요. 부하직원 경조사비, 금일봉 등 자기 생색내는 데 세금을 공사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쓰는 거죠. 그동안 예산을 꼼꼼히 들여다 봤던 입장에선 횡령·배임과 함께 필요 없이 잡아놨거나 엉뚱하게 쓰이는 돈을 합하면 최소 한 해 예산의 10%는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내년 예산이 471조원이니 엄청난 액수죠.”라고 말했다.

우리 전북에서도 작년에 의원 재량사업비를 집행하면서 사익을 챙겨 몇몇 지방의원이 구속되는 사례가 있었고 재량사업비를 아예 없애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다시 재량사업비를 부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전북도와 각 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이 문제를 어물어물 ‘구렁이 담 넘듯’ 처리할 기회를 보고 있다. 더구나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같은 민주당으로 한통속을 이루어 ‘예산 깜깜이’는 자칫 외부의 감시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앞에 이상석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나라의 녹을 먹는 상당수가 세금도둑이다. 단체장은 자기의 개인 경조사비용과 부하직원을 격려한답시고 주는 격려금, 외부 인사들과 식사비까지 모두 국민의 세금으로 쓴다. 내 돈을 써야 할 곳에 국민의 세금을 마음대로 퍼 쓰면서 자녀들에게 티안나는 증여를 계속해도 단체장의 신고재산은 해마다 늘어간다. 실제로 민선 초기 시절에 도내 모 단체장에 당선되어 재선되었다가 금전적 문제로 불명예 퇴진한 ‘ㅇ’씨는 빚만 가득했던 사람이 부자간에 전주에 넓은 아파트를 따로 마련하고 수십억 원의 재산을 형성했다.

지방에서 업무추진비, 판공비 등 구체적 영수증 없이 집행하는 돈만 문제가 아니다. 지난주에 화제가 되었던 익산시 의원들이 줄줄이 해외연수라는 이름으로 의회를 비우는 데도 의원 1인당 300만원의 예산을 세워 말썽이 되었다. 문제는 금액의 과다가 아니다. 의회가 구성되자마자 자치단체마다 추가경정예산을 통과시켜 지방선거 뒤풀이용 예산이 벼락같이 만들어졌고 세금을 낸 국민은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맥락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에 쓰이는 돈은 예산에 드러난 금액만이 아니다. 의원들이 해외여행을 가면 해당 자치단체장과 실과소에서 별도의 여비를 마련하여 은밀히 전달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면 그 별도의 여비는 공무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올까? 천만의 말씀이다. 각 부서에 책정된 예산에서 빼낸 돈이 의원들에게 흘러간다. 의원에게 밉보이면 예산심의 때에 관련 부서의 예산이 칼을 맞을 수 있기에 규모에 따라 성의 표시한다.

지방의원의 해외연수 비용을 사례로 들었지만, 현재 자치단체의 ‘세금도둑’을 찾자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군사정부 시절에 ‘효과적인 도둑질’을 위해 만들어진 포괄적 예산이 세부 용도를 낱낱이 밝히는 비목별 세부 투명예산으로 바뀌기 전에는 세금도둑을 다 잡아낼 수 없다. 국회가 환골탈태해서 예산회계법과 관련 규칙을 고쳐서 최소한 47조 원의 세금이 새는 걸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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