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유모차
할머니와 유모차
  • 전주일보
  • 승인 2018.08.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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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수필가

집 근처에 유모차 한 대가 버려졌다. 멀쩡한 새것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기능을 할 수 있는 정도로 보였는데 그냥 그 자리에 며칠째 있었다. 아기가 자라서 유모차가 필요 없거나, 낡아서 새것으로 사고 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다. 허술해진 유모차지만 어느 집 아이의 어린 날을 즐겁게 해주었던 삶의 일부라 생각하니, 쓰레기처럼 버려진 모양이 볼 때마다 짠하고 아쉬웠다. 그걸 이웃집 어르신이 고쳐서 쓰겠다며 끌고 오셨다. 몇 년 전 허리를 수술한 뒤부터 걷는 것조차 불편하여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다니셨는데 참 다행이다. 마침내 어르신도 자가용이 한 대 생긴 것이다.

마을 노인정 마당에는 유모차가 빼곡히 주차돼 있다. 헌 유모차가 대부분이고 요즘 새로 등장한 보행보조기도 몇 대 섞여 있다. 통계(2015년)에 따르면 임실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30% 정도 된다고 한다. 어느새 임실군도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것이다. 농촌 지역의 고령화는 비단 우리 지역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밖에 나가면 유모차를 밀고 외출하시는 어르신을 뵙는 것은 꽤 익숙한 풍경이다.

“우리 동네는 할매덜이 부자여! 자가용 한 대씩 다 있당게”

 “암만요. 시상의 어떤 고급 차도 안 부럽당게. 요것이 우리 헌티넌 효자랑게”

동네 어르신들이 농담을 주고받는다.

“할아버지도 한번 밀어보시죠?” 내가 맞장구치며 옆에 할아버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채신머리없게 남자가 무슨.”

할아버지는 애써 말을 아끼신다. 할아버지의 대답 속에는 이미 암묵적으로 저것은 할머니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확고하게 박혀 있음을 드러낸다. 나이 들어 힘겨운 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일 터이지만, 감히 할머니들의 전유물에 마음을 둘 수 없다는 뜻일까?

할머니의 유모차에 무엇이 실렸을까? 살짝 열어보았다. 손수건, 지갑, 간식거리 약봉지 등이 실려 있는데 의외의 물건도 있었다. 바로 벽돌이다.

“할머니, 무거운 벽돌은 왜 싣고 다니시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그래야 밀고 다니기 수월 혀. 아니면 홀라당 뒤로 넘어진당게” 몸을 의지해 밀고 가면 가벼운 앞부분이 들리기 때문에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벽돌을 싣고 다니는 것이다. 벽돌은 할머니의 체중을 버텨주는 역할과 함께 살아온 삶의 무게처럼 소중한 것이리라. 당신의 몸무게에 알맞은 벽돌을 실어 남은 삶의 나날을 지탱하는 노인의 지혜가 정겹다.

  유모차는 할머니들의 자가용이자 지팡이요, 짐을 실어 나르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지팡이 대신 유모차는 훌륭한 대안인데 더하여 물건도 실을 수 있으니 이거야말로 노년 필수품이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아기들이 타던 낡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어르신이 많았는데 요즘은 유모차 기능이 추가된 보행보조기를 밀고 다니는 분도 있다. 걷다가 힘들면 의자처럼 걸터앉을 수 있고 의자 안쪽으로는 수납공간이 있어 장을 보거나 가방 등 물건을 넣을 수도 있어 사용이 편하다 하신다. 손잡이에는 브레이크까지 있어 더 안정적이다. 우리 동네 어르신 중에서도 이 안전하고 편한 보행보조기를 미는 분도 있지만 아직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시는 분이 더 많다. 손자가 타던 것이거나 여기저기서 기증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얼마 전 어느 단체에서 안 쓰는 유모차 보내주기 운동을 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중고 유모차 재활용을 통해 환경 보호도 하자는 좋은 취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마을에도 그 유모차를 기증받은 어르신이 여럿이다.

어제까지는 아기 삶의 일부였을 유모차가 이제는 할머니 삶의 전부가 된 것이다. 아기가 앉았던 자리는 낡아빠져 벽돌을 얹기도 버겁다. 바퀴는 닳고 닳아 허술해 보일망정 번쩍이는 자가용보다 요긴하다. 유모차가 오늘도 할머니의 아픈 허리를 지탱해주며 앞장서 모시고 나왔다. 할머니의 세월을 군소리 없이 보듬은 유모차는 시장으로, 병원으로, 나들이로 잘도 모시고 다닌다.

문득 어릴 적 풀었던 피라미드를 지키는 전설 속의 동물인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 답은 ‘사람’이다. 유아기에는 두 손과 두 발로 기어 다니다가 성년이 되면 두 발로 서서 걷고 노년기에 이르면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것을 빗댄 넨센스 퀴즈다. 그러면 이제는 ‘아침에는 여섯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다시 여섯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 이렇게 물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한때는 풋풋한 생을 시작하는 아기가 타고 온갖 재롱을 떨었을 유모차가 이제는 생을 마무리하는 길목에서 할머니와 함께 느릿느릿 여생을 밀고 간다. 지금 내 앞을 걷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니 안도현 시인의 ‘할머니의 유모차’라는 시가 생각난다. 한 폭의 시화를 감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아기의 삶을 담았던 버려진 유모차는 다시 할머니의 삶으로 옮겨와 밀고 끌며 또 할머니와 동행하여 어쩌면 함께 생을 마칠 것이다.

  할머니가 유모차를 밀고 가고 있다/ 허리 굽은 할머니가/ 아기도 젖병도 없이/ 손가방 하나 달랑 태우고 가고 있다/ 이 유모차를 타던 아기는/ 올봄에 벌써 1학년이 되었다/ 아기 손목이 굵어지는 동안/ 할머니의 손등은/ 더 쪼글쪼글해지고/ 아기 종아리가 통통해지는 동안/ 할머니의 키는 더 작아졌다/ 오늘은 유모차가/ 할머니를 모시고 가고 있다.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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