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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코트를 사랑한다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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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9  17: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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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 월/수필가

장롱 안을 살피는 아내의 어깨너머로 누렇게 바랜 바바리코트가 반갑게 다가온다. 그 순간 가슴 저 밑으로부터 가벼운 흥분이 인다. 타다 남은 젊은 날의 낭만이 아직 내 몸 어딘가에 조금쯤은 남아있다는 말인가.

서울에서 공무원으로 취직한 아들이 첫 월급으로 이 검정 코트를 사 왔던 때는 퍽 낯설었다. 나는 새 옷을 볼 때마다 아내의 잔소리에 투정으로 맞대응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아내는‘가꾸지 않은 곡식 잘되는 법 없다’라며 옷이 날개란 말로 다독였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나는 아내 말을 듣고는 내일의 출근길이 슬며시 기다려졌다.

바바리코트는 초라할 뻔 했던 내 날개가 되어 칙칙한 숲을 헤치고 날게 해주었다. 까만 코트가 다소곳이 걸려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중학생 시절의 기분이었다. 교복을 입었을 때만큼이나 설렜던 게 엊그제일 같았다.

아내는 이 옷 저 옷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본다. 그리고는 장롱 안으로 들이거나 밖으로 내보낸다. 겨울이 멀지 않으니 한 철 간 옷들은 내보낸다. 그리고 철에 맞는 옷은 안으로 들인다. 어떤 옷들은 쫓겨나듯 밖으로 나와 바닥에 쌓인다. 이들은 수거함 아니면 화장터로 갈지도 모른다.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겨울 채비에 바쁘다. 할머니 어머니 때부터 그래왔으니까 아내도 따르는 게 순리다. 세월을 견디다 보니 한 잎 두 잎 낙엽 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이제 손발이 가드라 들기 전에 식구들 겨울옷을 챙겨놓아야 안심을 할 나이가 되었나 싶다.

코트는 추위를 막기 위하여 겉옷 위에 입는 옷이다. 추위도 나름이기에 그에 맞추어 입는 코트도 각기 종류가 여러 가지다. 특히 바바리코트는 옷감이 얇아 가을이나 늦은 봄 등 약한 추위에 입는다. 명색이 덧옷이니 어느 정도 추위와 상관을 시켜 입어야 몸에 부담이 덜 한다.

남달리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양복 위에 겉옷을 하나 더 입었다. 그러나 이 바바리코트라고 하는 겉옷은 추위를 막기에는 그다지 도움이 못 된다. 그런데도 이 코트를 입기 위해 가을이 앞당겨서라도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는 코트를 입거나 덜 추운 날이면 팔에 걸친다. 멋을 부리기에 딱 어울리는 얄브스름한 덧옷이다. 입어도 뚱뚱해 보이지 않아서 좋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날개처럼 팔랑인다. 바바리는 그런 맛에 입는다.

그날따라 하굣길의 신작로에 휘도는 바람결이 매서웠다. 나는 코트 깃을 바짝 올려 귓바퀴를 타고 넘는 바람을 막고 걸었다. 그때 후배인 오 선생이 내 뒤를 따라오면서

“선배님 참 멋있어요.”라는 게 아닌가. 이런 칭찬이 내가 코트를 입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해주었다. 한술 더 떠서 팔에 걸치고 출퇴근이나 나들이를 하는 버릇까지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회백색의 겨울 속으로 가는 길목에 나는 서 있다. 멋을 부리는 것이 퍽 어줍다는 생각으로 멈칫해진다. 바바리코트를 입고 가들랑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실 바닥에는 이미 나를 떠날 옷가지들이 수북하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을 꾸며주었던 코트도 저런 신세가 되지나 않을까 아심아심하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가 코트를 돌돌 말아서 사정 두지 않고 던진다. 코트는 잔챙이 옷들 위에서 시들하다. 한때 팔팔하던 내 젊음도 저렇게 시들어갔으리라. 이름도 방향도 모르고 어디론가 사라져 갈 것이다. 내 젊은 날이 살아 돌아와 항의라도 하는 성싶다. 눈에 쌍심지가 돋아 아내에게 따져본다. 꼭 버려야 하느냐 고. 아내는 내 표정에 신경이 쓰이는지 한마디 한다. 아이를 달래는 훈계 같다.

“젊은 날에 늘어놓았던 헛된 꿈들은 버려야 합니다. 감정의 겉치레도 하나씩 벗겨 내세요. 쓸데없는 모임이나 감투도 이제 맞지 않습니다. 미련을 버리세요.”

아내의 말을 찬찬히 새겨보니 허투루 하는 잔소리는 아닌성싶다. 낙엽이 길바닥에 뒹굴면 겨울은 성큼 다가온다. 내 나이쯤이면 마음이 앞장서 길을 떠날 때다. 굳게 닫힌 마음에는 두꺼운 커튼이 내려진다. 어둑한 마음의 창에도 내 겨울은 깊게 배어들 때다. 해묵은 추억들로 가뭇없이 사라지는 인생의 겨울이다.

바바리코트가 떠나듯 이런저런 것들도 하나둘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가벼워질 수 있다. 어제 올랐던 성황산의 도토리나무들도 풍성한 잎을 버리지 않았던가. 다가올 겨울에 맞추어 홀가분하게 서 있었다. 열매를 털고 비대해진 몸매를 줄이어 바람에 맡기고 있었다.

바람에 온몸을 흔들어대다가 아득히 흩어져가는 억새꽃을 생각한다. 이처럼 아름다웠던 나의 과거도 풍장風葬 하듯 떠날 것이다. 풍요가 출렁이던 벌판, 호수 같은 하늘이 텅 비어 밀려올 때도 있을 게다. 그러면 단골집 할매식당에서 친구와 추억을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식어가는 가슴을 데우면 된다. 아련한 내 젊은 날을 장식해주었던 바바리코트를 사랑한다. 하얀 발자국을 남기며 당당히 걸어가는 나의 겨울을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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