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가해자
  • 전주일보
  • 승인 2018.08.06 15: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 강점기, 1924년 만주에서 한 조선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얼마 안 있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아이는 엄마와 교회를 다니며 공부도 했다. 가난이 웬수였을까, 아이는 단돈 40원에 권번에 팔린다. 그 아이 17살 무렵, 양아버지와 베이징으로 가던 중 일본군에 납치돼 위안부로 내던져졌다. 그곳에는 조선말을 하는 다른 여성들도 있었다.

조선 남성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일본군 손아귀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점령지)에서 일상을 누리기도 했다. 허나 한국전쟁은 남편을 앗아갔고 이후 아이마저 사고로 목숨을 다한다. 사방천지 피붙이 하나 없이 혈혈단신으로 남겨진 여성은 전쟁 후 서울에 남는다. 서울 종로 판잣집에서 온갖 굳은 일을 하며 목숨을 연명했다.

1991년 8월 14일, 이 여성이 전 세계인 앞에 섰다. 세계 최초로 일본군의 잔악한 전쟁범죄, 강제 성노예 운영실태를 고발하는 피해 당사자 증언자로. 이름과 얼굴, 신상을 드러내며 자신의 존재로써 일본의 반인륜적인 전쟁범죄를 증언했다. 그녀, 김학순 할머니의 한 많은 이야기다.

이 날은 군의 개입은커녕 성노예 존재 자체를 부정해온 일본정부의 잔악함을 한 여인이 자신의 전 생애를 빌어 세계인에게 고발한 날이다. 일본군 성노예문제에 대처해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지난 2012년 이 날을 '세계 위안부의 날'로 지정했다.

그녀의 용감한 증언에 힘입어 강제로 끌려가거나 감언이설에 속아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던 아시아 여성들이 속속 증언에 나섰다. 한국 시민사회와 국제사회는 그녀들의 증언에 연대와 뜨거운 지지를 더했다.

생존자의 증언에도 일본이 여전히 부인하던 중, 이 나라 최초 '여성'대통령이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을 '전격'선언한다. 심지어 위안부 피해할머니들에게 지급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게 10억엔의 출연금까지 받았다. 물론 피해당사자들에게 단 한마디 의견도 묻지 않았다. 단돈 10억엔에 그녀들의 영혼을 팔아먹었다는 국민적 비판이 쇄도했지만 그 여성대통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놀랄 일이 더 있다.

이번엔 사법부다.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피해여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1심 소송에 개입하려 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대법원 판결과 헌법재판소 결정 논리까지 뒤집으며 소송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생이 채 얼마 남지 않은 그녀들이 제기한 소송은 지금까지 3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그사이 피해 여성 절반이 숨졌다.

이 쯤 되면 묻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는 누구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