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에어커튼?
무늬만 에어커튼?
  • 전주일보
  • 승인 2018.07.2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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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편집고문

염천(炎天)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는 7월이다. 더운 날씨 가운데서도 새벽 잠깐은 조금 시원해져서 잠시 깊은 잠을 잘 수 있어야 사람이 지치지 않는데, 그저 종일 푹푹 찐다. 새벽에도 27~8도를 넘나드는 이런 더위가 1994년에 있었다는 매스컴의 기사가 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이만한 더위는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밤더위가 누그러지면 창문을 열고 선풍기 하나로 잠을 청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없다. 대기 질은 미세먼지가 나쁨이고 초미세먼지는 ‘매우나쁨’ 수준으로 고착되어 창문을 열면 목이 껄껄하다. 새로 발생한 10호 태풍 암필이 더위를 좀 밀어낼까 기대했지만, 되레 습기만 불어넣어 끈적거리기는 데다 뜨거워 찜질방 같다.

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에 의지하여 자다가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계측을 할 수 없어서 잘 모르지만, 산소가 부족해져서 답답하지 않나 싶어 초미세먼지 58㎍/㎥인 바깥공기를 불러들였다. 그렇게 새벽공기를 끌어들이고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아침이 되어 일어났지만, 잠을 잔 것인지 더위하고 싸우다가 지친 건지 머리가 멍멍하다.

이런 시련은 나만 겪는 일이 아닐 터이다. 멋진 주택에 최신식 공조기 시설을 갖춘 사람들이야 더우나 추우나 바깥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지만, 이나마 작은 에어컨조차 없이 이 더위를 견디는 사람들은 어떨지 생각하면 공연한 투정이라 싶어 겸연쩍다.

언젠가 선풍기를 선물 받은 노인이 “고맙지만, 전기요금이 무서워 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쪽방에서 폐지를 주워 모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노인에게는 선풍기도 돈을 먹는 무서운 물건이라는 현실을 위정자나 자치단체의 관계자들은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출마자들은 하나같이 시민을 주인으로 잘 받들어 모시겠다고 귀가 아프도록 떠들고 다녔다. 당선 후에 취임하면서도 시민을 위해 분골쇄신할 것이라는 그럴싸한 약속들을 거듭했다. 거기까지가 선거 퍼포먼스의 끝이다. 연임에 성공한 단체장은 전에 하던 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고, 새로 당선된 단체장은 뭔가 보여주기 위한 깜작 쇼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일요일인 어제 오후에 월요일자 신문을 제작하기 위해 체감온도 38도는 됨직한 거리를 걷다가 출근했다. 효자동 안행교 정류소 근처에 볼일이 있어 네거리에 신호를 기다리느라 섰는데, 옆이 시원하다. 네거리의 교통섬 위에는 볕 가리개가 쳐 있고 한쪽에 커다란 얼음덩어리가 놓여있었다. 덥던 참에 얼음위에 손을 얹으니 짜르르한 냉기가 손을 타고 금세 전해와 몸이 식는 느낌이다.

작년 한 더위에도 그 자리에는 얼음덩어리가 놓여 있었던 생각이 났다. 작년에는 평화동 네거리에서도, 관통로 네거리에서도 얼음덩이를 보았다. 요즘 한더위에 이런 얼음을 놓아 시각적으로 시원하고 더위에 힘든 사람이 손으로 만지면 금세 시원함이 전해져 더위를 잊게 할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가 고마웠다.

안행교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려다가 어디서 더운 바람이 나는 거 같아 올려다보니 길쭉하고 납작한 형광등처럼 생긴 기계에서 나오는 바람이다. 생각해보니 지난주에 전주시에서 버스 승강장에 설치한다던 ‘에어커튼’이다. 에어커튼 이라면 외부공기를 차단하여 내부의 시원한 공기를 유지하는 장치이어야 할 터인데, 두 줄기 바람이 모두 후끈한 헤어드라이어 바람이다. 아마도 더운 날씨 탓에 작은 기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 싶었다.

4천만 원을 들여 시내 20개소에 설치한 에어커튼이 이런 정도라면 돈만 날린 듯하다. 아마도 조금 시원한 날씨에는 에어커튼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더위에는 얼음덩어리 한 개만 못하지 싶다. 한더위에 도움이 안 된다면 잘 못한 짓이다. 별 도움이 안 되는 에어커튼 보다는 승강장에 찬물을 마실 수 있는 시설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근 시간에 쫓겨 누가 놓았는지 알아보기를 포기하고 바쁘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타고 가면서 네거리마다 유심히 살펴보았다. 효자동 안행교 네거리에서 시청까지 오는 동안 신호대기 장소에 볕 가리개는 얼마나 설치되어 있는지, 작년에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던 얼음덩어리나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는 물통 따위가 보이는지 찾았다.

작년 더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운 요즘 날씨인데, 작년에 네거리마다 보이던 볕 가리개도 별로 보이지 않고, 얼음덩어리나 물통 따위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시민들은 양산을 쓰거나 건물 옆 그늘진 곳을 찾아 부채를 부치며 헐헐거리는 광경만 눈에 뜨였다. 이런 날씨에는 가만히 집에 머물러 에어컨 바람이나 쐬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래서는 목구멍에 풀칠을 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살기위해 거리에 나온다.

이런 더위에 어쩔 수 없어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돌아간다. 살기위해서 하는 짓이면서 그 덕분에 다른 사람들이 먹고 쓰는 재화가 만들어지고 거래가 이루어져 소통이 되는 것이다. 좋은 행정, 좋은 복지는 함께하는 데에 있다. 생활전선에서 더위를 무릅써야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주는 행정이 진정 좋은 행정이 아닐까?

차라리 신호대기 장소마다 볕 가리개를 설치하고 얼음덩어리라도 두어서 잠시 식힐 방법을 강구해주는 게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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