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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 옷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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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9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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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수필가

연일 폭염 주의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치 푹푹 삶는 듯 덥다. 더위에 헐헐거리며 안절부절못하자 아내는 장롱을 뒤져 허름한 옷 한 벌을 내 놓는다. 중년 즈음의 어머니가 내게 지어 주셨던 하얀 모시옷이다. 30년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옷이지만, 잘 손질해 놓아서 마치 목련나무위에 하얗게 피어 있는 한 송이 꽃인 듯 소박하고 귀한 매무새는 여전하다. 요새 같이 더운 날에 입으면, 입은 사람이나 보는 이의 눈이 함께 시원할 거라는 아내의 말에 정감이 묻어난다.

사람들은 찜통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물가로 달아나거나 에어컨에 의지하여 나날을 보낼 것이다. 어디 예전에는 그랬던가? 동구나무그늘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숯불처럼 달아오른 몸을 식히거나 부채를 들고 한더위를 달래곤 했다. 그러고도 더위가 남으면 시원하게 흐르는 개울물에 등목을 하고 높은 평상에 큰 대자로 누워 불어오는 바람에 스르르 잠드는 것으로 더위를 피했다.

어머니가 이 옷을 지어주시던 그 때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후여서 어머니 혼자 허리 휘도록 일하던 시절이었다. 낮에는 논밭에서 김을 매고 저녁 시간을 이용해서 이 옷을 만들곤 하였다. 밀려오는 피로를 밀쳐내며 한 올 한 올 잘라내고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다가 짧은 밤을 훤히 새곤 하였다. 그러기를 여러 날,

“맞을랑가 모르것다.” 하시면서 비단보에 싸인 옷 꾸러미를 건네 주셨다. 그때 얼른 얼굴을 돌려 애써 내 시선을 피하시던 어머니의 눈에 그렁거리던 이슬방울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모시옷은 어머니의 사랑과 눈물과 회한이 고된 노동을 거쳐 형상화된 결정체이다. 모시를 심고 길러, 그것을 다시 베어다 삶고 껍질을 벗겨 실을 만들고, 베를 짜서 옷을 짓는 과정에는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손가락이 부르트고 진물이 터져도 멈출 수 없는 것이 실을 낳고 짜는 일이다. 자칫하면 말라버려 실을 곱게 이을 수 없게 되고 잘못 묵혀두었다가 작업하면 좋은 세모시를 짤 수 없다. 모시 올 하나에 아버지를 그리는 별리의 정을 새기고, 다른 올 하나에는 고단한 인생살이의 설움과 자식에 대한 희망을 그려가면서 씨줄과 날줄을 엮으셨을 것이다.

그런 옷을 어이 냉큼 쉽게 입을 수 있을까? 망설이고 있으니 어머니의 성화가 빗발쳤다. 그때는 나도 기력이 넘치는 40대의 중반 이었다. 몸도 건강하고 기운이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모시옷을 입으니 시원한 것은 말 할 것 없고 귀티가 났다. 어머니는

“조선시대 어느 대갓집 대감마님 같다.”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아내도

“정말 잘 어울린다.”며 좋아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의 일생은 길쌈과 함께 한 고단한 여정이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노루꼬리 만큼의 짬만 나면 길쌈도구를 챙기셨다. 여름밤은 희끄무레한 새벽녘이 다가와야 길쌈바구니를 치우셨고, 싸락싸락 눈 내리는 겨울밤에도 베틀 위에서 딸각딸각 버디를 내리 치셨다. 그렇게 마련된 모시 베를 꺼내놓고 자식들의 옷을 손수 마름하여 지으셨다. 눈이 희미해지고 허리가 굽어지는 아픔조차 사치라고 생각하셨던 어머니. 입이 부르트고 손마디가 굵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우렁이가 새끼를 위해 온 몸을 내어주듯 오직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치며 입히기 위해 삶을 활활 불태웠다.

별빛이 총총 쏟아지는 여름밤이면 가끔 어머니는 모시옷을 손질 하셨다. 마당에는 놓여있는 대나무 평상위에서 빳빳하게 풀을 먹여 꾸덕꾸덕하게 마르면 모시옷을 다리셨다. 다리미 속에는 숯불이 이글거렸다. 홀로된 외로움과 아픔을 이글거리는 숯불에 던져 버리고 오직 자식들에게 당신을 살라 바치는 소신공양의 삶을 사셨다. 가까운 대밭에서 짹짹거리는 새들의 노래 소리, 풀숲 어디에서인가 울어대는 풀벌레들의 합창을 위안삼아 사셨을 것이다. 오직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 자식들의 숨소리에서 고단한 삶을 보상받으셨을 어머니….

 

모시옷을 입었다. 잘 익은 배의 속살 같은 옷, 눈부시게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가늘고 매끄러운 올 하나하나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품격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저고리의 도련과 소매 아래 자락은 아직도 그의 부드러운 선을 잃지 않고 고아하다. 성긴 올 사이로 속살이 들여다보일 듯 아련하고, 날개처럼 가벼워서 몸에 걸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속에서도 가슬가슬한 감촉은 쉽게 무너지지 않으려는 선비의 기개가 숨어 있는 듯하다.

“그래, 이런 맛이야.”라던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오래 잊고 살았던 그 감촉과 시원함. 아파트 창문 넘어 들어온 결 고운 바람이 모시옷 올올 사이로 서슴없이 밀고 들어온다. 선풍기나 에어컨을 통해서 들어오는 기계바람이 아니라 대자연이 보내주는 천연 그대로의 바람이다. 바람 속에는 산골짜기에서나 느낄 수 있는 쾌적함이 있다. 폭포의 물보라 속에서나 맛 볼 수 있는 상큼함이 있다. 맨살에 닿는 바람보다 모시옷을 파고드는 바람이 더 시원한 것 같다.

그 먼 시간 속에서도 사위지 않은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모시올 사이사이에서 돋아나는 이 시원함, 이 무더위조차 날려버리는 모시옷이 있으니 이젠 더위쯤이야 두렵지 않다. 양 팔을 벌려 한 바퀴 획, 또 한 바퀴 휘리릭 돌아보니 금세 날아갈 듯하다.

“더위야 물렀거라!!” “어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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