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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단장(斷腸)’의 아픔이 계속되는 나라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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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1  15: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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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갑 제/언론인

‘삶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만 발전한다.’라고 했던가.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국민적 열망은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을 바꾸는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에다 북미정상회담은 마지막 남은 냉전시대의 유물인 한반도의 진정한 데탕트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낡은 정치 청산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국민적 열망도 선거로 판가름 났다. 탄핵 이후에도 반성하지 않고 냉전주의 사고방식과 망국적 지역주의로 연명하려던 야당은 그야말로 된서리를 맞았다. 바야흐로 온 국민이 그토록 열망하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화가 들풀처럼 만발한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정말이지 거짓말처럼 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남북이산가족 문제만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이다. 단장(斷腸)의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종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망자(亡者)든 생자(生者)든 어찌 한 서린 통곡(痛哭)의 세월이 아니랴.

 ‘단장(斷腸)’이란 글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환공(桓公)이 촉(蜀) 땅에 들어가 이 땅의 삼협(三峽)을 지나는데, 부하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잡아 끌고 갔다. 그러자 그 어미가 강가를 따라 슬피 부르짖으며 백 여리를 가도록 쫓아오더니 마침내 온힘을 다해 배 위까지 뛰어 올라 왔다가 힘이 다해 죽었다. 그 배를 갈라 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새끼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애 타는’ 마음은 그 창자를 마디마디 끊어 놓은 것이다. 그때부터 ‘단장’이란 말은 혈육지친 간의 슬픈 이별이나 지극한 그리움을 나타내는 말이 됐다.

남의 나라 일 같지만 이 단장의 슬픔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다. 그들은 살아있을 때 꿈속에서도 그리던 부모형제를 단 한번이라도 보고 싶어 한다. 언제나 따듯하고 반갑게 맞아주던 고향땅도 눈에 아른거려 이제는 뼈에 사무칠 터. 그러나 현실은 만날 수 없고 갈 수도 없는, 인륜과 천륜을 모두 막아버린 세월이다. 지구상에 이런 아픔을 70년 이상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 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거의 3년만인 오는 8월 20일 금강산 상봉이 결정되었으나 몇 차례의 추첨과 확인을 거쳐 겨우 100명만 추첨으로 선정한다. 오매불망 그리던 혈육의 정을 한낱 심지 뽑기로 결정해야하는 노인들의 심경이 어떠할 지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온다. 추첨을 하던 날 2차 후보자에 들지 못한 95살의 박성은 노인을 비롯한 90세 이상의 노인들이 절망하던 소식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분들은 하루빨리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져 자유 상봉이 가능할 날을 기대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한두 해에 그런 날이 오지는 않을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현재 상봉을 신청한 사람이 남측에서만 5만6천 890명에 이른다. 이것도 5년 사이에 고령 등으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70%이상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 수치다.

문제는 이 중 80세 부터 90세 이상 초 고령노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번 상봉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 아프고도 처절한 이산가족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기약 없는 세월이 더욱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96세 어머니가 71세 딸을 끌어안고 울고, 90세 아버지가 환갑의 아들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던 날. 우리 모두가 함께 울며 지켜보던 그 가슴 저미는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 장면들도 이제 얼마 있으면 추억의 영화 속 한 장면이 될 지도 모른다.

‘나무는 잠잠하려 해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는 구절은 새삼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별인지도 모르고 이별한 사람들. 그때의 철부지들은 지금도 세상과 작별하고 있는데, 무심한 세월은 멈출 줄을 모른다. 과연 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인가. 어쩌면 지금 고령이 되기까지 그분들이 버텨온 힘은 어떻게든 죽기 전에 혈육을 만나서 한 마디 ‘어머니, 아버지, 형님, 동생’을 불러보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자다가 일어나 보면 깊은 밤 홀로 앉아 삯바느질 하시던 어머님의 뒷모습, 자식들 추울까 봐 못쓰게 된 솜을 뜯어내 겨울옷을 누벼 입혀주시던 어머님. 그리고 늘 인자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뛰놀던 형제자매들. 더 늦기 전에 이들을 만나게 해주어야 한다. 명절 때라도 모여 큰 누이는 흰 떡을 시루에 찌고, 작은 누이가 붉은 치마 다림질 하면, 막내아우 형님에게 절을 올리고, 그 형은 어머님께 세배를 하게 해야 한다.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든 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산가족상봉 문제는 어쩌면 북한의 사정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서로 만나게 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번듯하게 살지 못하는 사정이야 서로 만나는데 문제될 수 없다. 일단 만나게 하고 그 다음을 생각하면 안 될까? 이 땅의 지도자들이여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 하리’라는 시조의 한 구절을 아는가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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