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뒤끝 태양은 더 뜨겁다
장마 뒤끝 태양은 더 뜨겁다
  • 전주일보
  • 승인 2018.07.05 1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꿉꿉하다. 우중충하던 하늘이 갑자기 뻥 뚫린 것 처럼 폭우를 쏟아낸다. 그런가 싶더니 또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운 태양이 머리를 달군다. 종잡을 수 없다. 지레짐작으로 그냥 나섰다간 한바탕 장대비로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나마 비라도 쏟아지면 낫다. 뒤집어쓰고 나면 차라리 시원하기라도 한다. 정말 짜증나는 것은 '내릴 듯 말 듯한'한 날씨다. 더운데다 습하기까지 하다. 땀은 흐르는데 잘 마르지 않는다. 몸은 끈적끈적하고 불쾌지수는 쑥쑥 올라간다. 장마철이 또 찾아왔다.

장마는 통상 6월 하순에서 7월 하순 사이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여름철 우기인 셈이다. 이 시기 동아시아를 동서로 가로질러 정체하는 전선이 형성되는데 이게 장마전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장마를 '임우(霖雨)'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 중국에서는 '메이유(梅雨)'라고 한다. 매실이 익어갈 무렵 내리는 비라고 해서 붙여졌다.

장마는 '장(長)+마ㅎ'에서 유래됐다. 국어연구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장마를 한자 '장(長)'과 우리의 고어인 '마ㅎ'의 합성어로 설명하고 있다. '마ㅎ'는 '물'을 뜻하는 우리의 고어다. 장마의 순수한 우리말로는 '오란비'가 있다.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란 의미다. 중종 22년인 1527년 간행된 한자교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에 '霖 오란비 림'으로 풀이된 데서 비롯됐다.

장마와 얽힌 얘기들도 흥미롭다. 그냥 웃어넘기기엔 서민들의 간절함이 절절하다. 시대와 지역적 특성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대표적인 게 '장마(張麻)' 얘기다. "옛날 함경북도 갑산 처녀들은 장마가 짧으면 마(麻) 대를 잡고 흔들면서 눈물지었다. 장마가 짧으면 마가 덜 자라 흉마(凶麻)가 되는데, 삼베 몇필에 오랑캐에게 팔려갈 것이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녀들은 장마철이 되면 '마야, 어서 자라다오'라고 울부짖었다. 여기서 '장마(張麻)'란 말이 유래되었다." 긴 장마에 대한 염원이 짙게 배어난다.

충청도에선 긴 장마를 경계하는 얘기가 전해져 대조를 이룬다. "충청도 보은(報恩) 땅의 처녀들은 장마가 길면 슬며시 들창을 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대추의 고장인 보은에서 대추는 처녀들이 시집갈 혼수를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밑천이었다. 긴 장마는 대추를 영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장마는 불편하다. 높아지는 불쾌지수로 일상이 짜증스럽다. 비 피해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장마가 반가운 이유는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이 잉태되기 때문이다. 가을의 풍요로움을 바란다면 장마의 불편함쯤은 웃음으로 넘겨야 한다.

급물살을 타던 한반도 비핵화 논의가 장마 시작과 함께 주춤거리고 있다. 여러 우려들이 나온다. 원래 국제 관계가 그런 것이다. 하물며 70여년의 북미 적대관계를 청산하는 세기의 협상인데 오죽할까. 장마 뒤끝 태양은 더욱 작열하는 법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의심치 않는 이유다. 때가 되면 장마는 걷히게 돼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