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라벨
스라벨
  • 전주일보
  • 승인 2018.06.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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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빠르기로 치면 치타를 따를 동물은 없다. 시속 130㎞ 속도로 눈깜짝할 사이에 먹이를 낚아 챈다. 100m를 단 3초에 주파한다니 세계 신기록 보유자 우샤인 볼트의 9초 58은 새발의 피다. 순간 가속력을 높이는 능력 또한 독보적이어서 공중 제비로 먹이를 낚아 챈다. 거의 신기에 가까운 묘기다. 치타는 빠름을 생존무기로 삼은 매우 탁월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반면 치타와는 달리 아예 느리게 살자고 작정한 동물이 있다. 이름에서 부터 게으름이 좔좔 흐른다. 나무 늘보다. 나무 늘보는 하루 평균 스무시간을 자거나 휴식을 취한다. 그런 나무늘보도 해질녁이 되면 조금 바쁘다. 물론 조금 분주한 수준이다. 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시속 400m로 움직인다. 땅에서는 시속 250m로 나무에 기어 오른다. 이것도 다급할 때나 내는 속도니 역시 나무늘보 답다. 급한 일이 없으면 한시간에 4,5미터 정도만 움직인다. 치타보다 무려 440배 느린 속도다.

느리다 못해 게을러 터진 나무늘보가 어떻게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글에서 살아 남을까. 역설적이게도 그 느림 덕분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관계로 재규어, 시라소니, 아나콘다, 수리같은 무시 무시한 포식자를 피할수 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나무 늘보 털에는 각종 이끼류와 나뭇잎이 무성해 마치 둥지나 나무의 일부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털이 위장막이 돼주는 것이다.

느리게 사는 덕분으로 나무 늘보는 주위 환경과 완벽한 조화를 이뤄 평화로운 초식 동물로 살아간다. 행복에 겨운 나머지 나무늘보는 정글 세상이야 어찌됐든 태평하게 웃고 있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치타형 인간들로 가득한듯 하다. 시간이 곧 돈이라는 신자유 시대. 어떻게든 남보다 빨라야 한다. 어려서 부터 빠른 출세를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빨리 빨리 사는 것에 목을 맨다. 그러나 빠름은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느리게 살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다. '저녁이 있는 삶'.'웰빙','워라벨'은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살때 가능하다.

'스라벨'이라는 신조어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 내린다. 'Study and Life Bala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다. 온갖 선행학습으로 찌든 우리 학생들에게 '공부와 삶의 균형'을 이뤄보자는 의미다. 만시 지탄이다. 어린 나이에 수학 정석, 피아노, 태권도, 줄넘기... 빨리 배워서 어쩌자는 것인가.

스라벨은 아이들을 그냥 놔두자는 염원이리라. 그렇다면 나무 늘보식으로 살면 된다. 빈둥 빈둥 뒹굴다 보면 아이들은 재미 있는 것을 찾게 마련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치타처럼 살다가는 결국 넘어진다.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이여. 내일 아침 부터 우리애들 늦잠 좀 자게 제발 내버려 두라. 나무늘보는 살아있는 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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