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러제트
서프러제트
  • 전주일보
  • 승인 2018.06.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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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동시 지방 선거가 한국사회 지형을 바꾸고 있다.

국민들의 변화 요구다.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이 요구에 대한 권리와 자유가 있다. 공기마냥 자연스러운 이 권리와 자유, 한 때 누군가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단지 그대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5년에야 참정권을 획득한 나라(사우디아라비아)도 있다. 불과 수십년, 100여년전 여성은 국민이되 권리는 없는, 그저 '사람'이었다. 심지어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남성들에겐 당연한 권리를 얻기위해 희생과 투쟁을 벌여야했다,

대표적인 여성참정권 운동 중 하나가 영국의 서프러제트(Suffragette)다. 지금은 사어가된 이 말은 참정권(Suffrage)에 여성 접미사(-ette)를 붙인 것으로 여성참정권운동, 여성참정권운동가를 지칭한다. 초창기 이 말은 경멸과 비하의 의미였다. 우리말로 하면 '어디 여자가…'라고나 할까.

19세기, 영국 자치령 뉴질랜드(1894)는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부여했다. 정작 영국은 이를 요구하는 여성들을 백안시했다. 그녀들은 강력한 무장투쟁까지 전개해야했다. 남편에게 쫓겨나고 자식과 생이별 당하는 것은 물론 투옥과 천대를 불사해야했다.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나왔다. 1918년 일부(30세 이상으로 재산이 있거나 남편이 있는)에게, 1928년에야 모두(만 21세 이상)에게 허용됐다.


프랑스 혁명으로 세계에 자유 사상을 전파한 프랑스. 오히려 여성의 집회와 정치참여를 금지했다. 2차 대전이 끝난 1946년에야 참정권이 허용됐다. 남성은 1세기 전 (1848년 )이다. 해방 직후 참정권을 획득한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독립하면서 여성참정권을 갖고 출발했다.

북한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은 어떤가. 미국은 흑인노예보다 여성 참정권 취득이 늦었다. 노예는 19세기(1870) 참정권을 얻어냈으나 여성들은 1920년에야 가능했다. 각 주법 개정까지, 전면적 허용은 20세기(미시시피 주 1984년)에야 가능했다.

뉴질랜드에 이어 호주(1902년)가 세계 두 번째다. 유럽은 핀란드(1906)를 시작으로 소비에트연방(1917) 독일 네덜란드(1919) 등 1, 2차 대전 전후해 주어졌다. 중동은 카타르(1990)를 시작으로 21세기(사우디아라비아)에야 완결됐다.

오늘날 여권 신장에 대해 일부에서 '피곤하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나 여성들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비슷한 권리를 얻기 위해 전 생을 내뎐져야했다. 오늘 내가 누리는 '당연'한 권리나 혜택들이 기실 누군가의 희생을 발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참정권 뿐이겠는가.

허투루 살아서는 안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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