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과 워라밸
주 52시간과 워라밸
  • 전주일보
  • 승인 2018.06.20 1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노동자들은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의 꿈은 하루 8시간 근로였다. 8시간 노동제를 최초로 주장한 것은 1866년 결성된 '미국 노동자동맹이다.

그 로부터 20년 뒤인 1886년 시카고 맥코믹농기계주식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을 시작으로 1889년 5월 1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나와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 시위를 벌였다. 세계 각국에서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의 날(May Day)'로 기념하게 된 계기이다. 그리고 미국은 1938년 공정노동기준법을 제정해 기업의 법정 근로시간을 주 40시간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과 함께 주 48시간제를 적용해 오다 1989년 주 44시간으로 근로시간을 줄였다.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주 5일 근무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면서 4시간을 더 줄여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48시간에서 40시간으로 8시간 줄이는데 무려 58년이나 걸렸다. 얼핏 보기에 선진국과 비슷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다. 하지만 근로자와 사업주가 합의하면 연장근로로 일주일에 12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고 휴일근로도 16시간까지 가능하다. 결국 주당 최대 근로시간은 68시간이 된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1인당 연 평균 근로시간은 2천69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천763시간 보다 306시간이나 많다. 가장 적은 독일(1천363시간)보다는 무려 700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지난해 OECD에 가입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더 나은 삶의 질 지수'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유엔 행복보고서의 '행복지수'는 58위로 기대 이하 수준이다. 저녁이 있는 삶과 가족을 포기한 대신 장시간 노동에 매달리는 '과로 사회'였다.

내달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법정근로시간이 주당 68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대폭 줄어든다. 주 5일제를 시행한지 14년만에 진짜 주5일 근무제를 맞게 된 셈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

물론 초창기 부작용도 우려된다.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 감소와 중소·영세기업의 비용부담 증가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일부 문제점이 있으면 개선하면 된다.

직장과 가정의 양립, 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이 내달부터 시작된다.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서 1970~1980년대 노동자들의 삶으로 묘사된 '전쟁 같은 밤 일을 마치고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찬 소주를 붓는 일상'이 사라질지 궁금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