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섬' 간호일기
'사슴섬' 간호일기
  • 전주일보
  • 승인 2018.06.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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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슴처럼 슬픈 눈망울이 아름다웠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사슴을 닮은 그 섬은 물 맑고 산이 고왔다. 그러나 예쁜 모습을 형상으로 해 붙여진 이름과 달리 섬이 가슴깊이 품고있는 애환은 주절 주절 풀어내도 다함없는 우물이라 할만 했다.

작가는 '당신들의 천국'을 통해 그 섬에 갇혀 살아야 했던 이들의 멍에와 한(恨)들을 세상에 알렸다. 세상 사람들은 썩어 문드러진 속살, 그로 인해 강제된 천형(天刑), 병마(病魔)의 질기디 질긴 사슬에 얽매인 사람들을 어느 정도는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겉보기로 풍광 수려한 섬에 종속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향한 열정과 그것을 배반하는 메커니즘간의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섬을 배경으로 한 그들만의 천국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함으로써 감추어진 진실이 드러나는 어떤 계기가 됐다.

보리피리 불며/봄 언덕/故鄕 그리워/피-ㄹ 닐리리…(중략)

짓무르다 못해 뭉텅 뭉텅 떨어져 나간 손가락없는 손으로 써 내려간 시인의 '보리피리'역시 절망과도 같은 한많은 삶들의 여러 넋풀이 가운데 하나였다. 반생을 내쳐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시인은 '봄언덕'에서 기억 아스라하게 떠나온 고향을 그렸다. '꽃청산'에서는 아무 근심걱정없던, 그러나 기억마저 지워져버린 어렸던 나날들을 피울음으로 회고했다. 시인이 섬으로 강제로 끌려가던 그 때에도 황톳길은 붉은 먼지 어지럽고 더위는 숨막히게 온 몸을 내리 눌렀을 터다. 적막강산에 내 던져진 시인이 그나마 고단한 몸을 잠시라도 뉘인 곳은 사슴의 눈망울처럼 슬픔을 간직한 '소록도(小鹿島)'라는 섬이었더랬다.

작가와 시인의 짙은 고뇌의 내력이 깃든 작은 '사슴섬 간호일기'가 출간됐다. '문둥병'에서 '나병(癩病)', '한센병'으로 매번 이름이 바뀐 천형의 삶을 살아가는 한센인들과 함께한 백의의 천사들의 경험담이다. '무슨 빌곳없는 죄를 지었기에 저런 병에 걸렸나'하며 소름을 감추지않은 일반인들의 편견과 씨름해온 소록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국립소록도병원 간호조무사회가 주관해 발간한 간호일기는 이번이 13번째다. 1993년 첫 발행을 시작으로 2015년 12번째 책을 발간했다가 3년만에 신간을 선보인 셈이다. 창간호부터 12번째 책에 게재됐던 글 가운데 63편, 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소록도를 다시 찾은 간호조무사 동문들의 글 8편, 자원봉사자들이 써낸 이야기 등 총 93편이 수록됐다.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인들을 치료하고 돌보았던 간호조무사들의 이야기. 간호업무를 하면서 체험한 한센인들의 고달픈 삶과 애환, 고통과 몸부림. 그들의 눈에 비치고 마음에 다가왔을 소회는 전문 작가의 글, 전문 시인의 시가 표현했던 바와 또 다른 울림으로 세상 밖에 전해질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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