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던 그날, 그의 모습은 유려했다. 한 점 흠결 없이 미끈한 외양은 도공의 손으로 빚어진 자기와 같았다. 우유 빛 정장을 맵시 있게 차려입은 청년 모습 그대로였다. 곡선과 직선을 황금률로 어울린 날렵한 자태는 아폴론의 태양마차처럼 눈부셨다.
지금도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처음 볼 때의 자릿하던 감동, 나는 처음 신부를 맞이하듯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하나의 반려로 녀석을 맞아 들였다. 저 또한 나의 충직한 애마가 되어 주겠다는 듯이 ‘투루르’ 콧김을 불어대는 준마가 앞발을 들어 주인을 반가워하듯 조용한 엔진소리를 자랑했다. 아득한 전생에서부터 맺은 인연처럼 바라만 보아도 서로 뜻이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의 애마는 산타페이다. 스페인어로 '신성한 믿음(Holy Faith)'이라는 뜻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육중하고 견고한 모습은 근육질 장정처럼 믿음이 갔고, 튼실한 궁둥이도 대감 댁 맏며느리 같은 후덕함과 어디를 달려도 좋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비좁지 않게 확 트인 실내 공간, 지친 몸을 기대면 푸근하게 감싸주어 편안할 것 같은 의자도 나의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게 했다. 몇 년 전 ‘길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라는 선전문구가 이 차를 두고 하는 말이려니 했다.
지금은 낡고 헐어 고물이 되었지만, 내가 처음 녀석을 만나던 그 시절에는 자동차가 요즘처럼 거치덕대는 존재가 아니었다. 길을 달리다 보면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손을 들어 태워 달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등 굽은 내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태워 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못 본 척 지나는 경우가 많았다. 운전 솜씨가 미숙해서 교통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한 몫 했지만, 자동차가 더러워질까봐 알고도 모른 체 하기 일쑤였다. 그때는 그런 마음이 부끄러운 것인지 조차 몰랐다. 남들이 다 그냥 지나쳐가는데 나만 그분들을 태워드리는 건 공평하지 않다고 에둘러 구실을 꾸며대는 교활함도 배웠다.
녀석은 오랜 세월을 큰 말썽 없이 달렸다. 주행 거리가 40만 km에 가까우니 지구를 열 바퀴나 돈 셈이다. 매년 봄이 오고 꽃물이 터지는 때쯤에는 지리산 자락을 거쳐 섬진강 은물결 7백리 길을 거뜬히 달렸다. 연분홍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남해의 항구도시 진해에서는 가버린 첫사랑의 체취를 생각하다가 왕 벚꽃 향기에 그리움을 띄워 보내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내 마음이 향하는 곳에는 언제나 녀석이 있었고 동서남북, 온 나라의 방방곡곡을 누볐다. 그러나 무엇보다 녀석과 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것은 부산에서부터 통일 전망대까지 백두대간 등줄기를 따라 신나게 달렸다는데 있다. 만경창파 동해의 푸른 물결과 장엄한 일출에 매료되어 한 순간 넋을 잃었던 일도, 아름다운 낙조의 황홀함에 한없이 서서 떠날 줄을 몰랐던 일도 기억의 책장 속에 나부기는 한 폭의 깃발이다.
백두대간의 푸른 정기를 나의 인생 여정에 수채화로 그려 넣을 수 있었던 것도 애마가 나에게 안긴 큰 선물이다. 비록 망원경을 통해서나마 갈 수 없는 북녘의 강토를 바라보며 평화통일의 결의를 다졌던 일, 경주의 1,000년 혼을 나의 뇌리의 겹겹이 새겨두었던 일, 크루즈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건너가 한라산 자락을 굽이굽이 누비면서 남국의 정렬적인 풍광에 빠져 들었던 일도 결코 지울 수 없는, 애마와 함께 써 내려간 땀내 나는 서사시이다.
인간사가 그러하듯 영광의 길만 다닌 것은 아니다. 때론 비탈길을 달리다가 우리의 가족에게 커다란 상처도 안겨주기도 했다. 아내와 아들의 혼사문제로 자동차 안에서 티격태격 하던 중 내리막길에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아내의 허리가 삐끗 했다.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병원을 들락거리며 치료를 받았던 아내는 자동차에 탈 때마다 그 일을 되 뇌이며 지청구를 늘어놓는다. 봇물처럼 터지는 잔소리를 잠재우려면 애마는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나 녹음이 짙은 산골길을 한나절이나 더 달려야 하는 수고를 한다.
세월이기는 장사가 없다더니 녀석도 많이 달라졌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서 예전만 같지가 않다. 단아하던 그 맵시도 퇴물처럼 궁색하고 빈티가 난다. 너덜거리는 몸체에는 황량한 바람이 문풍지를 울리듯 소리를 내며 스쳐간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기름 치고, 조이고, 갈아 끼우는 등 섬세한 손길을 받으면 죽었다가 깨어난 듯 되살아나곤 한다. 당분간은 걱정 없이 구를 수 있겠다는 소리에 시름이 안개처럼 사라진다.
이제 나와 애마에게도 작은 꿈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남녘의 사계절이 그려내는 산자수려한 강산을 달렸다면, 철도 중단점에 서있는 철마처럼, 저 북녘의 산천을 달려 백두산, 두만강까지 가 보고 싶다. 마침 남북의 양 정상이 만나 문화교류 및 이산가족의 상봉을 확약했고, 며칠 전에는 북미 정상이 완전한 비핵화에 합의 하는 등 평화의 조짐이 보이기에 더욱 가능하리라 믿는다.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와 아기자기한 폭포도 보고, 대동강의 부벽루와 을밀대를 거닐어보고도 싶다. 거기다 풍류남아 임제(林悌)처럼 송도의 황진이 무덤에 한 잔 술을 따르는 풍류는 또 얼마나 멋진가?
애마야, 그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