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것
헛것
  • 전주일보
  • 승인 2018.06.1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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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는 것이나 서산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
왜 나는 고개를 숙이는가

옆에 앉은 사내가 하늘을 본다
나도 사내의 시선을 따라갔다
새 한 마리가 곡소리를 내며 점 하나로 사라진다
허공이다

사내의 가슴은 빈 가슴일 것이고
내 가슴도 빈 가슴이다
모든 것들이
헛것이다

사내가 엉덩이를 툴툴 떨더니
왔던 길로 돌아간다
화산공원은 공원公園이 아니라 공원空圓이었다

 

/화산공원 :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어은골 주변 뒷산

 

실제로는 없는데 있는 듯이 보이는 대상을 헛것이라고 한다. 헛것을 보는 눈은 온 몸의 정기가 다 모이는 곳으로 정신과 마음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가 잘 돌지 못하여 이상한 것이 보이고 미혹된 것을 보는 것을 헛것을 본다고 하다. 한방에서 말하는 안화증眼花症이 생기면 눈앞에서 불똥 같은 것이 어른어른 보이기도 하고, 오색의 꽃무늬나 검은 꽃무늬가 나타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파리가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원인은 모두 간장과 신장이 허하거나 혹은 신허객열腎虛客熱 때문이라고 한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조팝나무 그늘아래 부황난 누이의 칭얼거림이나, 고추잠자리 날아간 바지랑대 끝에 걸린 허공이나, 밤하늘의 앞가슴을 긁고 가는 별똥별이나, 더위에 지친 칸나에게 물 한 컵을 주는 늙은 어머니를 보고 공책에 적어야 할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시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날밤을 새는 사람이다. 헛것 같은 시일지라도, 바람 같은 시일지라도, 한 그릇의 밥이 되지 않는 시일지라도, 무릇 시인은 시 한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잉검불같은 시의 불씨를 땅 여기저기에 심을 때 헛것 같은 시는 헛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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