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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실눈 뜨던 날금요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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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31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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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고 운 /수필가

추위가 한풀 꺾여 포근해진 오후 시간 속을 걸었다. 개구리가 잠을 털고 나온다는 경칩도 지난 그 날, 웅크렸던 대지에 내리는 햇볕은 은혜처럼 포근했다. 길가 볕 바른 자리에 선 산수유 가지에 수수 알만큼이나 작은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알갱이마다 가늘게 씨줄을 그은 듯 노란빛이 돋아나고 있었다. 뭔가 싶어 들여다보니 포근해진 날씨에 벙그는 산수유 꽃눈들이 가늘게 실눈을 뜨듯 노란 속살을 드러내는 참이다. 작은 산수유 꽃망울들이 껍질을 여는 순간과 내 시선이 서로 만난 것이다.

그 망울들은 처음에는 부끄러워 실금처럼 가늘게 껍질을 여나보다 했더니 아니었다. 내가 잠시 들여다보는 사이에도 다투어 틈을 더 벌리거나, 가로질러 날줄이 터지면서 노란색이 더 보이도록 제 몸을 여느라 부산하다. 고속촬영 화상으로 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본 일은 있지만, 작은 산수유 꽃망울이 벙글어 터지는 걸 본 느낌은 새로웠다. 전주 평화동 어느 아파트 옆 양지바른 길을 걷다가, 정말 우연히 눈길이 멎어, 그 작고 하찮아 보일 만큼 다닥다닥 붙은 알갱이가 꽃이 되려고 변신하는 순간을 보았다.

이제 막 사랑을 안 어린 소녀가 남몰래 사랑하는 소년을 위하여 마음의 창을 아주 조금만 열어주며 소년의 마음을 기다리는 그런 순간처럼, 산수유 망울은 실눈을 뜨고 세상에 작은 손을 내밀 채비를 하고 있었다. 봄은 그렇게 아주 조금만 열리는 듯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저 땅 밑에서 열심히 밀어 올라오는 새싹들, 나뭇가지마다 도도록하게, 봉긋하게 부풀어 오르는 꽃눈과 잎눈.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새 생명들의 환희가 그 작은 꽃망울이 벙그는 틈을 통해 다가왔다.

잔가지에 주절주절 달린 작은 망울은 그냥 보아서는 도저히 꽃이 될 것이라고 짐작할 수 없었다. 매화나 벚꽃의 꽃눈은 여러 겹으로 층을 이루어 감싸고 있으니, 꽃이 될 것이라는 암시라도 있다. 처음 나오는 산수유 꽃망울은 동그란 모양이어서 꽃눈이라는 어떤 암시도 없었다. 봄볕을 받아 표피가 네 쪽으로 갈라져 열리면, 그 작은 것이 점점 퍼지면서 한 무리 꽃이 되고 가을에 빨간 열매로 익는다. 자연의 솜씨 아니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마술이다.

 

얼마 전에 나사(NASA)가 명왕성 근처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지구는 보일락 말락 하는 파란 점에 불과했다.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밀가루 한 분자만큼도 되지 않을 지구다. 그 작은 지구에서 작은 나라 한국, 전주시의 한 길가에서 좁쌀만큼 작은 것들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하는 걸 내가 본 일은 결코 사소한 우연이 아니었다. 오늘 오후에 자투리 시간이 생겨 걷지 않았더라면, 우연히 그쪽을 쳐다보지 않았더라면 작은 산수유 봉오리들이 우화(羽化)하는 몸짓을 볼 수 있었겠는가.

그 몸짓은 내게 생명의 의미를 일러주는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비록 찬란하거나 탐스럽지도 못한 산수유 꽃 한 송이도 그저 아무렇게나 피어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단단한 껍질로 둘러싼 동그란 알갱이 꽃눈을 마련하느라 볕을 모으고 물을 끌어 올려 오랜 준비를 해왔음을 말하고 있었다. 자연이 가진 진정한 힘은 태풍이나 지진 따위의 위협이 아니라, 하찮은 생명마저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경이로움이라고….

봄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들과 새로운 생명이 세상과 만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죽음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나는 부활의 때이기도 하다. 봄이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내려서는 그 환희를 실감하면서 나는 온 생물과 인류의 희망을 엿본다. 태어나면서 곧 죽음의 길을 가야 하는 생명들이, 죽음에서 되돌아올 수 있는 희망을 숨겨두고 있는 봄은 칭송받아 마땅한 계절이지 싶다.

이제 산수유 작은 망울들은 그렇게 눈을 뜨면서 커지기 시작할 것이다. 따뜻한 봄볕에 자란 망울이 완전히 네 조각으로 갈라지면, 그 속에서 스물이 넘는 작은 씨방마다 우주선의 안테나 처럼 벋은 세 개의 수술이 달린 꽃들이 피어난다. 마치 수컷 공작의 날개가 펴지듯 작은 꽃이 활짝 열리면 부지런한 벌들이 찾아와 꿀을 찾으며 수분을 해준다. 그때쯤 산수유 가지는 알갱이 시절을 잊을 만큼 풍성해지고 노란 안개가 퍼지면서 노란 봄을 피워낸다. 수정된 씨방은 열매로 자란다. 수분에 실패한 꽃은 ‘시나브로 지고 봄은 오자 또 떠날’ 것이다.

 

대개 꽃들은 자기의 모양과 색을 분명하게 지니고 저만 보라는 듯이 시선을 끌어들인다. 오직 제 예쁜 모양만 보아달라고 교태를 부리는 게 꽃의 생리다. 그러나 산수유는 보는 이의 시선을 독점하려 하지 않고 양보할 줄 안다. 꽃이 만발해도 그 뒤에 있는 담장이나 집, 길이 아렴풋이 보인다. 산수유 꽃은 제가 잘난 척하거나 뒤에 있는 것 앞에서 군림하려 들지 않는다. 산수유는 저 혼자 나서지 않고 뒤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하며 공존한다. 오히려 뒤에 있는 것들을 아름답게 하고 꿈속으로 이끄는 듯 황홀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작고 볼품없는 노란 꽃이지만, 그 작은 것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시야를 완전히 가리지 않는 자기희생까지 감수하는 봄꽃이다. 산수유는 봄을 피우는 노란 안개다.

나는 봄이면 가끔 남도의 산동 산수유 마을에 갔다. 집집마다 길목마다 온통 산수유 꽃으로 덮인 마을. 집과 수더분하게 쌓은 돌담과 길까지 모두 노란색을 뒤집어 쓴 마을을 걷다 보면 내 몸조차 노란 물이 드는 듯했다. 산동의 산수유는 안개처럼 온 마을에 퍼지고 넘쳐 노란 안경을 쓰고 보는 그림책 같았다. 노란 안개로 나를 몽환에 헤매게 하던 산수유, 봄날의 산수유 마을은 꿈속의 마을이었다.

이 봄에는 그 노란 마을에 찾아가 노란 길을 걸으며 노란 집과 돌담을 보고, 노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노란 나라의 언어로 내 그리움을 전하고 위로받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다. 평생 독불장군으로 살면서 가슴에 켜켜이 쌓이고 더께 진 불통과 고집을 털어내려는 소망을 지닌 노란 마을의 벅수로 남아 풍화하는 시간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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