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고양이와 소통하다
야생 고양이와 소통하다
  • 전주일보
  • 승인 2018.05.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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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황 정 현/수필가

나는 고양이를 싫어했다. 고양이의 표독해 보이는 두 눈과 소름 돋는 야옹소리를 들을 때마다 머리끝이 곤두서기 때문이다. 예전에 보았던 ‘전설의 고향’에서의 복수 장면과 끔직한 배경음에 오금이 저렸던 기억도 고양이에 대한 혐오감을 보탰을 것이다. 작은 고양이의 안광이 살쾡이의 그것과 닮았고, 큼지막한 호랑이로 확대되어 머릿속에 어른거리면 몸서리를 치곤했다. 게다가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생선 따위의 먹을 것에 대한 탐욕스런 포획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짐승의 본능적 탐심을 두고 사리분별을 기대한 내가 우둔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오래 비워둔 시골집 앞마당에 노랑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웃 집 고양이가 나들이를 왔던가, 아니면 어디 멀리 살던 것이 우연히 들렀는가 싶었다. 당연히 나는 싫었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말에 시골집에 가면 늘 눈에 띄었고, 때로는 야옹하며 내 주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나는 소리를 꽥 질러 내쫓았고 막대기로 위협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멀리 도망치지도 않고 마당 끝으로 달아나더니 다시 집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의 일을 했고 고양이를 잊었다.

여름의 긴 장마가 끝나고 후텁지근한 더위가 온 누리를 감쌀 때 나는 시골집 뒷밭의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다. 갑자기 두 마리의 노랑 고양이가 한 쪽 풀밭에서 튀어 나오더니 그들 앞으로 도망치는 쥐를 좇으며 쏜 살같이 달려가고 있었다. 결국 쥐는 고양이에게 잡혔고 고양이는 쥐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마리의 고양이가 두 마리가 된 것이 어떤 사연인지 모르겠으나 암컷과 수컷 한 쌍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의 빈 집에서 먹을 것이라고는 사람이 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터에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는데 쥐를 잡는 모습을 보니 그 실마리가 잡혔다.

쥐를 잡는 일은 고양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여러 이유들 중 하나였다. 어느 시골집이나 비슷하겠지만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어서 쥐들이 들끓었다. 예전부터 집안 식구들이 거처하고 있을 때는 물론 아무도 살지 않고 비워둔 채 있어도 쥐들이 수시로 출몰하였다. 천장에서 퉁탕거리고 대청마루를 제멋대로 오가는가 하면 많은 똥과 오줌을 여기 저기 배설했다. 쥐가 먹을 만한 것은 곡식 낟알 하나까지 치우고 차단시켜도 쥐의 출몰은 막무가내로 여전했다. 쥐를 박멸하려고 쥐약, 쥐덫, 찐득이, 심지어 초음파 발생기까지 설치했지만, 쥐들의 분방한 발호를 그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쥐 잡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니 고양이가 나의 오랜 고민거리를 해결해 줄 것 같다는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고양이의 쥐 잡는 모습을 보고나서 쥐를 없애야겠다는 내 이기적 필요성과 고양이에 대한 고정관념 사이의 고민은 절로 풀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가 되기도 했고 이해타산의 절실한 가치가 되기도 했다. 당장 나는 내 눈 앞에서 어른거리는 고양이에게 고함지르기를 그만두었다. 과자나 생선으로 고양이의 관심을 끌고 호감을 사는데 주력했다. 고양이가 영물이라더니 나의 부드러운 변화에 고양이도 호응했다. 먹을 것을 주는 내 신발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 옆구리를 스치는 것이었다. 경계심을 완전히 푼 것은 아니었지만 다가서는 고양이의 등을 나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짐승도 다사로움과 부드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 뒤부터 나는 야생고양이의 내 집 거주를 은연중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내 밥을 덜어 고양이에게 주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시골집에 가면 자동차 소리를 듣고 어디선가 고양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야옹거리며 다가드는 고양이의 홀쭉해진 뱃가죽이 눈에 들어오면 측은한 생각이 들어 얼른 갖고 간 생선찌꺼기며, 기타 먹을 것을 주었다. 이제 이 고양이는 나의 빈집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었다. 그해 겨울, 고양이의 배가 유난히 불렀던 것이 눈에 띄었다. 새끼를 밴 듯했다. 나는 빈 곳간에 등겨를 깔아두고 고양이에게 새끼를 낳을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곳에 새끼를 낳을지 모르겠으나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다. 그렇다고 고양이의 모든 일에 관심을 주거나 관여를 할 수는 없었다. 다만 한두 주 만에 시골집에 갈 때면 고양이 밥을 잔뜩 놓아 주곤 했다.

그렇게 고양이와 화해한 뒤로 방안 천장에서 요란스럽게 뛰어다니던 소리가 없어졌다. 냉장고 뒤 엔진의 온기에 기대 살던 쥐들 때문에 겨울철에 냉장고를 가동하지 않았더니 그곳 쥐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고양이들의 소리가 밤이고 낮이고 울려 퍼지니 쥐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었다. 이제 고양이들은 식사 때만 되면 토방 앞에서 야옹거리며 먹을 것을 달라고 재촉했다. 뒷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밭에까지 좇아와 먹을 것을 달라고 채근했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고양이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암, 먹을 것을 주어야지. 너희들 덕에 나의 빈 집 주변은 물론 100m 이내에서 쥐들이 다 사라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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