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서막 '5.16 쿠데타'
불행의 서막 '5.16 쿠데타'
  • 전주일보
  • 승인 2018.05.16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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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대표이사

1961년 5월 16일은 기회주의자 박정희가 쿠데타로 국민주권을 탈취한 날이다. 1960년 4월19일 영구집권을 노리고 부정 선거를 일삼던 이승만 정권에 맨주먹으로 맞서서 피 흘려 되찾은 국민주권을 박정희가 탱크를 앞세워 탈취한 부끄럽고 더러운 날이다. 주권을 강탈한 박정희는 주권강탈행위를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여 나라의 모든 시스템을 정지하고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쿠데타 조직이 모든 것을 장악했다.

군대는 개인이나 기업이 피땀 흘려 번 돈을 목숨을 위협하여 빼앗아 저희끼리 나눠 가지며 희희낙락했다. 박정희가 하는 말이 바로 법이었고 그에게 밉보이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거나 목숨을 잃기 예사였다. 맞서거나 맞서려 하는 자는 간첩이거나 공산당으로 조작하여 죽이거나 가두었다.

박정희는 육군 소장에서 대장으로 승진하여 예편하면서 선거로 제5대 대통령이 되었다. 1963년 10월 15일 실시된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군대에서는 공개 투표를 지시하고 곳곳에서 부정 투표를 자행한 끝에 당시 민정당의 윤보선 후보에 15만5천표를 더 얻는 데 그쳤다.

그 뒤에 1967년과 1971년 두 번의 선거도 여론에서 절대 불리한 선거를 부정선거와 지역감정 조성을 통해 당선돼 내리 세 번을 연임했다. 그 후 여론이 들끓자 1972년 10월 17일 19시에 국회를 해산하고 정치 활동을 중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모든 결정은 비상국무회의가 장악한다는 계엄선포로 실질적인 제2의 쿠데타를 감행했다.

박정희는 세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하지 않았으면 당선이 어려웠던 점을 없애기 위하여 유신독재를 구상하고 헌법을 개정하여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였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선거기구를 만들어 그들이 대통령을 뽑았다. 1972년 12월 23일 선거에서 2,357명 전원 찬성으로 제8대 대통령이 되었고, 6년 후인 1978년 7월 6일 투표에서는 2,577명 전원 찬성으로 제9대 대통령이 되었다. 소위 체육관 선거라는 전대미문의 대통령선거를 이 땅에 출현시킨 것이다.

‘안보’를 팔아 두 번째 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는 스스로 대통령 자리를 차지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자신과 추종세력만 낄낄거리며 잘사는 나라를 만들었고, 허구헌날 유명 연예인들을 불러 술과 오입질을 일삼았다. 혹자는 박정희가 경제정책을 잘한 덕분에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말하지만, 당시 기업에 차관을 들여오면서 차관액의 상당 부분(50%까지)을 김종필 등 관련자들이 갈취하였다고 한다.

워낙 가진 것이 없던 기업들이라 그런 돈이라도 요긴하게 사용해 경제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게 사정을 아는 일들의 증언이다. 그때 정권의 갈취나 훼방이 없었다면 훨씬 더 성장이 빨랐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계엄령으로 정국을 장악한 박정희는 정적인 김대중을 강제 구금하고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는가 하면 헌법 유린을 비난하던 장준하가 의문의 실족사로 사망하는 일도 발생하였다. 권욕의 화신이 된 그는 자신이나 정부에 반기를 드는 모든 반대세력과 인사들을 용납하지 않는 철권통치를 자행하였다.

박정희는 기업인들을 수시로 청와대로 불러들였는데, 그때마다 기업들은 거액을 들고 가서 바쳐야 했고, 금액이 적으면 차지철 등을 시켜 린치를 가하는 착취행위를 일삼았다. 박근혜가 기업에 최순실 재단 출연금을 요구한 일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 바로 박정희의 그러한 일상을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절정에 이른 1979년 10월은 YH사건으로 촉발된 부마항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항쟁에 관한 대응 문제로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정부장 김재규의 알력이 심하던 그해 10월 26일 궁정동에서 연예인들을 불러 저녁 파티를 하던 박정희는 차지철과 함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으면서 18년 독재를 마감한다.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다시 12.12. 정변으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에게 세습되어 신군부의 독재가 시작되고 우두머리만 바뀌었을 뿐, 군사독재는 더욱 강화되었다. 두 번의 체육관 선거로 1988년 2월까지 무려 8년간 권력을 흔들면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광주시민을 학살하는 등 악랄한 통치를 자행했던 전두환은 다시 노태우에게 권력을 물려주어 1993년 2월까지 군부 통치는 계속되었다.

1961년 5월 16일부터 1993년 2월까지 무려 31년 8개월 동안 군사독재가 이어오면서 이 나라에는 권력에 아부하고 빌붙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 논리가 세워졌고, 무식하든 행실이 어떻든 돈만 있으면 어른 노릇을 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1등이 되어야 하고, 과정이 어찌 되든 결과만 중시하는 가치관이 만들어졌다. 사회정의나 최소한의 도덕도 무시되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비난받는 사회, 오직 돈과 권력만을 위해 매진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 지난날의 가치관이 심판을 받고 전임 대통령들이 법정에서면서 조금씩 나라가 바로서는 중이다. 이제 다시는 지난 시절로 회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 획책이나 시도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면서 조금 불편하더라도 과거의 어둠을 털어내서 나라를 바로 세우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최근 한반도 평화가 점점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평화보다 좋은 안보는 없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평화의 길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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