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날마다 묘향산 가는 꿈을 꾼다
나는 날마다 묘향산 가는 꿈을 꾼다
  • 전주일보
  • 승인 2018.05.02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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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김 갑 제 / 언론인

“오래전부터 이루지 못한 꿈이 있는데 바로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트레킹하는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 소원을 꼭 들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퇴임하면 백두산과 개마고원 여행권 한 장을 보내주시겠습니까?”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서 건배를 위해 잔을 든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만찬 참가자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좌중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건배사는 “남과 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였다.

백두산과 개마고원을 도보로 여행하는 것, 누군들 꿈이 아니랴. 나는 묘향산을 거쳐 백두산을 오르는 게 꿈속에서도 그리는 소망이다. 물론 쉽게 이룰 수 없는 꿈이다. 그래서 더욱 간절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온 몸으로 사무치게 그리워했기 때문인가. 그 꿈이 지금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다가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평화협정이 체결돼 자유로운 북한 여행이 가능해 진다면 나는 우선 평양구경을 일주일쯤 하고 싶다. 그러나 일주일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면 평양에 대한 미련을 주저 없이 버리고 묘향산 가는 길을 택할 것이다.

묘향산은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3도가 만나고 갈라지는 분계령이지만 답사와 관광지로서의 묘향산은 평북 향산군 향암리를 일컫는다. 그래서 묘향산을 가려면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향산을 거쳐야 한단다.

지도상으로 보면 평양에서 순안과 숙천을 거쳐 안주와 정주를 지나 동북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다보면 향산이다. 도중에는 그 유명한 영변의 약산과 청천강이 있다니 아무리 바쁜 나그네 길이라 해도 어찌 눈 호강을 마다할 것인가.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있어 2시간이면 갈수 있다지만 영변의 약산과 청천강, 그리고 관서제일루라는 안주 백상루(百祥樓)를 구경하자면 반드시 옛길을 택해야 한다는 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의 선생 충고다. 그래서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옛길로 가고 싶다.

우리나리의 4대 명산으로 기록된 묘향산. 서산대사께서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묘향산은 장엄하고도 수려하다”고 평한 그 꿈에도 그리던 묘향산에 도착하면 우선 보현사를 보고 싶다.

경내를 걷다보면 측백나무에 감싸인 영산전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서 진하게 풍기는 향내로 묘할 묘자 향기 향자를 쓰는 묘향산명(妙香山名)의 내력은 자연히 깨달을 수 있을 터.

다라니 석당, 8각 13층 석탑은 물론 서산대사비가 있는 승탑밭도 반드시 봐야겠지만 추사가 써주었다는 상원암의 현판 글씨 또한 어찌 빠트릴 수 있으리. 절 구경을 마치면 묘향산 등산로를 따라 구석구석을 돌고 싶다. 백두산에서 개마고원을 거쳐 느릿하게 뻗어 내린 묘향산맥. 1,909m의 비로봉, 진귀봉, 천태봉, 오선봉에 이르기 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돌아보고 싶다.

비로봉과 법왕봉 사이 30리 산마루는 봉우리마다 계곡을 형성한다니 문수동 계곡, 만폭동 계곡, 천태동 계곡, 칠성동 계곡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계곡은 두 말할 필요도 없는 필수 답사 코스. 그중 폭포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는 만폭동계곡에선 시월하게 멱을 감고 싶지만 안 된다면 발이라도 담그고 느긋하게 풍광을 즐기고 싶은 마음 간절하기만 하다.

묘향산 도보여행을 마치면 낭림산맥을 거쳐 개마고원으로 향하고 싶다. 삼수와 갑산도 보고 싶은 산하다. 백두산의 날씨는 9월이면 눈이 내려 이듬해 5월까지 눈으로 덮이므로 6~8월 3개월 안에 봄 여름 가을이 전개된다. 중국을 거쳐 백두산에 오르기는 하지만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오르는 길은 사뭇 평평한 비탈길이 특색이라고 전해진다.

평평한 비탈길을 한참 달려가다 보면 온통 감자밭을 이루는 넓은 고원이 펼쳐지고 들꽃이 낮게 깔린 산자락이 이어지다가 이내 백두산 준봉들이 홀연히 나타난다고. 그리고 마침내 해발 2천750m, 백두산 상상봉(장군봉)을 곁에 두고 400m 발아래로 펼쳐지는 천지를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풍광이 펼쳐진다는 것. 밝은 태양 아래 들꽃이 만발한 천지를 바라본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천지에서 내려와 삼지연 마을 가까이 숲속에 자리 잡은 배개봉려관에서는 이 지방의 특산물로 차려진 밥상을 받고 싶다. 천지에서 잡은 산천어 구이와 백두산 들쭉술, 그리고 감자구이 등등. 북한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삼수갑산 혜산 개마고원 삼지연에 이르는 지역을 양강도라고 부르는데, 양강도 감자는 크기가 갓난애 머리만하고 벌방지대 감자와 달리 전분이 많아서 달다고 한다.

오월 단오 때부터 햇감자로 밥을 짓는데 보리쌀과 땅콩을 약간 섞은 감자밥은 대단히 향기롭고 상긋한 맛을 내며 소화도 잘된단다. 양강도 감자 중 백두산 감자는 첫서리를 맞고 9월에 캐기 때문에 ‘언감자’다. 그 언감자로 만든 농마국수, 감자찰떡, 감자묵, 언감자지짐, 농마지짐, 막가리지짐, 막가리국수, 오그랑죽 등 72가지나 된다는 감자 요리를 다 맛보고 싶은 건 지나친 욕심일까.

나는 이제 날마다 묘향산, 그리고 개마고원과 백두산에 가는 꿈을 꾼다. 냉전의 광기에 눈먼 기나긴 적대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족 이성이 눈뜬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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