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문리의 ‘새로운 평화’를 위하여
널문리의 ‘새로운 평화’를 위하여
  • 전주일보
  • 승인 2018.04.2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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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수필가

‘평화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의 남북정상회담이 오늘 열린다. 주제의 의미처럼 오늘 ‘새로운 평화’가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피어오를 것을 나는 믿는다. 판문점의 원래 이름은 ‘널문리’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잘난 선조 임금이 국난을 대비하자는 의견을 밀쳐버리고 방관하다가 1592년 4월에 일본군이 물밀 듯 쳐들어와 수도 한양을 압박하자 의주로 피난을 나섰는데, 임진강 나루에 배가 없어서 강을 건널 수 없었다고 한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대문을 모두 뜯어서 연결하여 선조의 어가를 건너게 했는데 그 이후 동네 이름이 ‘널문리’가 되었다고 한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못난 왕을 위해 대문을 모두 뜯어 강을 건너게 할 만큼 우리 백성들은 착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0월, 널문리 주막 앞에 임시 천막이 세워지고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을 때, 널문리는 세계의 시선이 쏠리는 지역이 되었다. 지역 이름은 당시 공용어이던 한국어, 영어, 중국어로 표기하느라 한문 표기를 써서 판문점(板門店)으로 바뀌었다.

선조 임금이 백성들의 대문짝을 이어 만든 다리를 건너 도망간 뒤 426년이 지난 오늘, 반으로 갈라진 나라의 두 정상이 널문리에 마주 앉아 민족의 내일을 논의한다. 회담장에는 도망가는 왕을 위해서 대문짝을 뜯어 바쳤던 백성들의 착한 심성을 이어받은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 한가득 내려앉아 있을 것이다. 그 소망과 조상들의 보우가 감응하여 분명하고 결정적인 내용의 합의를 이루어 온 세계에 아름다운 민족의 화해가 폭죽처럼 터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 민족은 어딘가에 매달려 의지하며 살아야 편안한 사람들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콩 한 쪽을 나누어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연의 끈을 자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다. 쉽게 감동하고, 남의 말에 잘 넘어가고, 물이 잘 들어 쉽게 패거리를 이루는 사람들, 정이 들면 그리움에 몸살이 나도 내색하지 못하는 수줍은 사람들이다. 외세의 힘에 갈라선 지 70년, 서로 다른 길을 걸었으나 남이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조금은 진심을 열고 만나는 오늘이다. 한반도에 대 변환이 올 것을 기대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우주 만물은 다 변한다. 빅뱅 이후 끊임없이 크고 작은 폭발과 에너지의 융합이 이어왔기에 여러 형태의 천체가 생겼고 지구도 생겼다. 그 지구에서 원시 생물이 탄생하고 진화를 거듭하여 오늘의 인간이 제법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루어 질서를 유지하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읽고 최선의 방향을 찾아 유지하느냐에 따라 인간집단의 발전과 진화의 속도는 달라진다. 그래서 북쪽의 변화도 믿고 싶다. 어제의 인식은 과거일 뿐, 오늘의 것이 아니다.

오직 변하지 않는 건 국민 세금만 축내고 있는 국회뿐이다. 오늘도 여전히 국정을 가로막고 민생이고 뭐고 안중에 없이 선거에서 이겨보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일부 야당 의원들, 내 이익만 생각하는 그들의 머릿속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요즘 날마다 달라지는 한 집단을 본다.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았던 그들이 연일 우리를 놀라게 한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생각되던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앞뒤 없는 전차처럼 좌충우돌 말썽꾼으로 동네의 골칫거리이던 그들이 갑자기 을러메고 틀어쥐었던 섬뜩한 핵과 미사일을 내려놓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진지하게 나섰다.

구소련의 핵 기술과 미사일 기술을 들여와 핵 무력을 완성했다고 자신만만했지만, 거대한 미국의 무력 수준과 비하면 애들 장난에 불과한 데다, 덕택에 외부세계와 완전히 격리되는 따돌림만 돌아왔다. 식량이 부족하여 끼니를 거르는 주민에게 핵무기는 보리쌀 한 됫박만큼도 가치가 없다. 권력을 틀어쥐었으나 밥도 못 먹이는 지도자이니 귓속만 가려웠을 것이다.

그토록 갈망하던 핵 개발은 이루었지만, 핵은 배부른 것이 아니어서 막상 이루고 보니 써볼 수도 없고 국제적으로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였다. 궁하면 통하는 법이라던가, 궁한 판에 평창 올림픽이 열렸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하여 북한을 부른 것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화답한 일은 어쩌면 역사의 신이 겨레를 한 수 도와준 일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유엔의 대북경제제재가 갈수록 강하게 조여와 숨이 막히는 가운데, 문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핵과 미사일이 있으니 만만하게 당하지 않을 자신이 생긴데다, 남한 정부가 한반도 평화와 북한을 연계한 ‘한반도 H축 발전’이라는 구상으로 북한과 대륙을 잇는 경제 벨트를 강력하게 추구하는 점도 김정은을 변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급변하는 ICT 시대에 폐쇄사회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젊은 김정은에게 변화를 요구했고 자신감을 얻은 그가 과감하게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변화가 현실을 얼마나 수용하고 있는지 걱정하기보다 우선 한 마당에 나와 말을 나누고 화해하려는 움직임이 반갑다.

오늘 널문리에 대문짝 대신 깔린 붉은 카펫 위를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함께 걸으며 민족의 새 길을 활짝 열어젖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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