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gapjil)'
'갑질(gapjil)'
  • 전주일보
  • 승인 2018.04.18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갑을관계는 원래 계약서 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던 '갑'(甲)과 '을'(乙)에서 비롯됐다.

주종이나 우열, 높낮이를 구분하는 개념이 아닌 수평적 나열적 관계를 의미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갑이 을보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다보니 상하관계나 주종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경영주와 종업원, 상사와 직원, 고객과 서비스업체까지 폭넓게 사용되면서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될 정도다.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 문화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과 만나 '갑의 횡포'(갑질)가 빚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갑질'은 갑을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로, 강자인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가리킨다. 갑을관계가 갈수록 세분화되고 있다. 아주 큰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갑을 '슈퍼 갑'이라 부르고 을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하청업체나 그 종사자 등을 병과 정으로 표현한다.

우리 사회 지도층의 '갑질'이 또 다시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주인공은 '물벼락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그는 '땅콩회항' 갑질로 유명세(?)를 탄 조현아 부사장의 동생이다. 조 전무는 지난달 16일 광고 관련 회의를 하면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고성을 지르고 물컵을 바닥에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무가 대한항공 직원은 물론 광고대행을 맡긴 광고회사 직원들에게 까지 막말과 지나친 질책을 일삼았다는 증언이 이어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도 '조현민 전무의 갑질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대한항공 사명과 로고를 변경해 달라' 등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을 중의 을인 계약직 직원과 아르바이트 대학생, 실업자 등 각종 차별에 서러움을 삼켜 온 이 땅의 약자들이 조 전무의 갑질 행태에 대해 느끼는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다.

미국 뉴욕타임즈 등 외신들도 이번'물벼락 갑질'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갑질'(gapjil)이란 단어를 신조어로 등재시키며 관심을 표명했다. 뉴욕타임즈는 "갑질은 중세시대 영주처럼 부하직원이나 하도급업자에게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라며 한국 재벌 일가의 특권 의식을 꼬집었다.

'갑을병정' 순서로 돌다보면 정 다음에 갑이 된다.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 우위에 있지 않고 먼저와 나중도 없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 열차 안의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가득한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선택된 권력자들이 탄 머리칸으로 돌진한다. 세상이 달라진 줄 모르고 관행처럼 '갑질'을 해대다가는 '설국열차'처럼 '을의 반란'이 시작될 수도 있다. 갑들이여!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잊지 말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