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과 종전, 그리고 평화
휴전과 종전, 그리고 평화
  • 전주일보
  • 승인 2018.04.1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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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대표이사

오는 27일에는 공동경비구역 평화의 집에서 남북의 정상이 마주 앉아 한반도의 장래를 논의한다. 잠시 전쟁을 멈추자는 휴전협정이 55년째 유지되는 남북 양쪽 전쟁 당사국의 최고 국정 책임자들이 전쟁의 완충지대인 비무장지대 공동경비구역에서 만나는 일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휴전협정은 북한과 중국, 미국이 체결하여 우리 정부는 서명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간 17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자신의 별장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있었던 미일정상회담을 시작하는 모두발언에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종전(an end to the war)’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날 트럼프는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It’s going on right now)”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남북은 종전을 논의 중이다. 남북은 분명히 나의 승인을 받을 것이고, 남북도 나의 승인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다.

트럼프의 자신감 속에는 국무장관 내정자인 ‘폼페이오’가 극비리에 이미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과 직접 대화하면서 북핵 폐기를 확인한데에 있다. 폼페이오는 상원 인준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이 바라는 체제보장 수단 등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되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의 말을 들여다보면 27일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트럼프의 ‘승인’이라는 표현은 휴전협정 당시에 미국과 북한, 중국이 서명했기 때문에 종전을 선언하려면 미국과 중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좋게 해석하고 싶다.

그동안 우리가 남북 접촉을 할 때마다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전쟁 중인 남북이 서로 만나려면 전쟁 참가국인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지난 평창올림픽에 북한 선수가 참가하고 북한의 대표단이 오는 문제도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할 사항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가 남북화해와 북핵문제 해결에 자기의 공로가 크다는 식의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거였다.

미루어 짐작해보면 미국은 이미 27일 남북회담의 의제와 결정의 수위까지 조정하고 두 정상은 이를 확인하는 과정을 수행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는 북한이 내놓은 핵문제 정리와 관련된 제안을 조금이라도 지키지 않으면 강력한 수단으로 북한을 제재하겠다는 엄포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여태 대들던 김정은이 갑자기 온순한 강아지처럼 삽삽하게 구는 일이 불안하다는 눈치다.

정리하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은 엄연히 이 땅의 주인인데도 모든 결정에서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고 휴전협정이 존속하는 한 그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처지인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의 위험을 없애는 일이야말로 주권을 회복하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탄탄대로에 올려놓는 일이 된다.

사사건건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서러운 처지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비틀었던 사드도 보내서 성주 주민들이 다리 뻗고 지낼 수 있어야 한다. 나라 예산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국방비를 줄여 살길이 막막하여 생목숨을 끊는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고, 아이들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어 인구절벽을 막는 투자도 할 수 있다.

오래전에 정동영 의원이 북방 경제론을 주장했던 적이 있다. 북한의 인력과 자원을 활용하여 해외투자를 줄이고, 소련의 가스파이프라인을 연결하여 값싼 연료를 쓰게 되면 경제적 이익과 대기오염까지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 당시에는 잠꼬대 같은 비현실적인 구상이었지만,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협정으로 남북이 상호협력하는 시대가 온다면 북방경제론은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본다. 가뜩이나 대기오염이 심한데 석유를 줄이고 가스를 주 연료로 쓰게 된다면 숨쉬기가 좀 편하지 않을까 싶다.

자동차를 타고 북한 금강산과 백두산을 둘러보고 북쪽의 고구려 유적지와 발해의 역사를 음미한 뒤에 몽골과 소련을 지나, 유럽까지 육로여행을 할 수 있는 그 날이 점점 가까워지는 꿈을 꿀 수도 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는 자전거로 한반도를 종주하고 중국의 광개토왕비 앞에서 인증샷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내 상상이 한없이 앞서 달렸다. 하지만 상상만으로 즐거운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트럼프가 그동안 까발리지 못해 안달하는 가운데 시적시적 내뱉은 말을 종합하면 분명히 우리 한반도 문제는 가장 바람직한 길로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코 내 상상이 뜬구름을 잡는 허황한 것이 아닌 것을 오래지 않아 확인할 수 있기 바란다.

그런데, 이 나라 정치판은 아직도 지난 밤 마신 술이 덜 깬 술꾼마냥 묵은 소리와 오래된 버전의 흘러간 노래만 부르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땅바닥인 여론을 뒤집어보겠다고 별의별 사단을 다 동원하지만, 과연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국회에서 농성이니 뭐니 깽판을 놓아도 남북회담 결과 한 방이면 그들의 몸부림은 의미조차 없어질 것이다. 한반도 평화가 이루어지면 꼴통보수들은 과연 무슨 타령을 부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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