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짝을 찾는 봄나들이금요수필
전주일보  |  webmaster@jj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29  14:00:1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황 정 현/시인, 수필가

카톡으로 한 친구는 등산 중 산을 배경삼아 찍은 자기의 사진을 보내왔다. 다른 한 친구는 화려한 꽃무늬에 봄의 찬가와 인사말을 올린 그림을 실었다. 생동하는 봄의 초입에서 나름대로 한 친구는 몸으로, 다른 친구는 봄에 물든 마음으로 봄을 마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나도 그 대열에서 빠질세라 봄 처녀의 아장거리는 모습을 시적으로 표현한 글을 보냈다.

“겨우내 움츠린 사랑이/봄바람 앞에 기지개를 폈다/ 추파의 행렬에 선 처녀는/바람 잡는 새가 되어/온 몸이 설레는 열기를 날리다/예쁜 눈초리의 유혹을 열고/세상의 풍경 속에/ 무작정 뛰어 드는 청춘이어라!/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시인으로 알려진 신라시대 설요(薛瑤)가 있다. 15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절에 들어가 여승이 되었지만 6 년 후 환속하고 세상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지은 시가 반속요(返俗謠)인데 따뜻한 봄의 풍경에 청춘의 뛰는 가슴을 그대로 드러내는 내용의 시를 썼다.

 

化雲心兮 思淑貞 (화운심혜 사숙정) 구름같은 마음으로 맑고 곧은 생각에 잠기는데

洞寂滅兮 不見人 (동적멸혜 불견인) 깊은 골 괴괴한 절간에 사람은 안 보이네

瑤草芳兮 思芬蒕 (요초방혜 사분온) 아름다운 풀꽃들은 향기가 가득한데

將奈何兮 吾靑春 (장내하혜 오청춘) 나의 꽃다운 이 젊음을 어이할거나

 

가슴에 끓어오르는 열정을 어찌할 수 없어 산을 내려온 그녀는 당나라로 건너가 하급관리의 아내가 되어 살다가 통천에서 죽었다. 새봄에 피어오르는 청춘의 열정이 얼마나 컸으면 봄바람의 유혹을 못견뎌했을까. 봄의 화신(花信)을 타고 은근한 설렘으로 짝을 찾는 본능적 유혹이 절간에서 수도하던 설요의 가슴만 흔든 것은 아닐 것이다.

봄이라는 계절은 지난겨울의 모진 추위에 병에 걸린 환자처럼 외출을 삼갔던 방안 퉁수들을 밖으로 불러내고 있다. 어찌 사람 만이랴. 자연 만물 중에 살아있는 생물들치고 기지개를 켜며 번식과 결실을 위해 부지런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느 이른 봄날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을 받으며 마늘 밭의 잡초제거 작업을 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푸른 봄기운을 발산하며 파란 잎사귀를 내민 잡초들을 보았다. 그리고 그 뿌리의 깊은 속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에 드러난 1-2㎝의 작은 새순에 비해 그 뿌리의 길이는 5배에서 10배에 이르렀다. 손으로 잡아 뽑으려하니 잎사귀가 잘려질지언정 뿌리는 뽑히지 않았다. 강한 저항감을 느꼈고 억지로 뽑힌 뿌리는 둘레의 흙을 뭉텅이로 매달고 버텼다. 흙을 붙잡는 잔뿌리들의 놀라운 지지력이야말로 추위를 견디고 영양분의 흡수를 최대한 늘리는 원초적 삶의 힘이었다. 튼실한 번식과 씨앗을 맺으려는 강렬한 진군의 모습이기도 했다.

봄을 맞는 자연계의 생물체들은 저마다 저장된 생명유지의 유전형질로 싹을 틔우고 결실하여 생물학적인 종족 보존을 이어가고 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물을 빨아올리며 대지에 뿌리를 깊게 뻗어가는 초목의 생존의 모습은 거룩하기도 하다. 말없는 땅 속의 역사(役事)가 얼마나 놀라운 생장을 이룩하고 있는지 일일이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다. 초목의 꽃들이 벌 나비 중매쟁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크고 작은 꽃잎들을 색깔별로 피우고, 향기를 풍기며 끊임없이 번식과 살아남기의 변신을 거듭 하고 있다. 곤충과 벌레들도 짝을 지어 번식의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짝 짖기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간도 준열한 번식의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완연한 봄기운을 따라 세상에 태어난 기쁨이 꽃피우려면 건강한 심신을 드러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있다면, 벌 나비가 꽃을 찾아가듯 제짝을 찾는 게 사람의 도리다. 봄의 화원이 생명의 조화를 돕고 있으며, 운명적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어떤 만족할만한 둥지와 지위에 얹혀 편안하게 찾는 만남이 아니라 긴장과 흥분이 교차하는 결실의 로맨스가 좋을 수도 있다. 오래 지속하는 달콤한 행복이란 어려운 시련을 거친 연단의 과정을 거친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젊은 청춘들의 결혼과 출산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이 때, 젊은 기운의 분출이 봄과 어우러져 짝을 찾는 봄나들이로 연결되었으면 싶다. 아름다운 꽃이 벌 나비를 유혹하고 받아들여 번식의 소명을 완수하려는 모습처럼, 모든 청춘 남녀도 한살이 가족형성을 여실히 이루어야 한다.

식물이든 인간이든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지 않고 관능적 교류를 외면하는 순간,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라시대 처녀 설요의 본능적 이성 탐색의 봄바람이야말로 그리움의 자연스러운 발현이었을 듯하다. 이 화창한 봄날에 짝을 찾는 젊은이들의 관능적 열정이 낭만적 삶의 생기를 불어넣고, 결혼과 더불어 풍요한 삶의 터전을 일구는 환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황정현/시인, 수필가

 

전주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05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98 (극동빌딩, 6층)  |  Tel 063-237-0095  |  Fax : 063-237-0091
등록번호 : 전라북도 가 00019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범규
Copyright © 2018 전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