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적폐’도 청산하자
‘문화재 적폐’도 청산하자
  • 전주일보
  • 승인 2018.03.2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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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신 영 배 /대표이사

최근 전북출신 인촌 김성수의 기념물들이 현충시설 지위를 상실했다. 국가보훈처가 인촌의 생가와 동상 등 5개 시설물에 대해 지난달 심의위원회를 열고 현충시설 해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현충시설이란 독립유공자의 공훈을 기리는 동상과 기념비, 탑 등의 조형물이나 장소를 말한다.

보훈처가 심의를 거쳐 현충시설로 지정하면 시설물에 대한 개·보수비용과 대국민 홍보 등을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는 혜택이 부여된다. 인촌 김성수는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최종 인정됐다. 이어 지난 2월에는 그의 공적사실이 거짓으로 판명돼 정부가 56년 만에 서훈을 박탈했다.

인촌 김성수(1891-1955)는 고창군 부안면에서 태어났다. 한때 인근 부안군 줄포항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잠시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9년에 도쿄 긴조중학교 5학년에 편입, 졸업하고 1914년 와세다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1919년 경성방직 설립인가를 받고 1920년에는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김성수의 친일 행적은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경성라디오에서 중일 전쟁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시국강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당시에 거금인 국방헌금 1,000원을 내는 등 본격적으로 일본을 위해 일했다. 1938년에는 ‘국민정신 총동원연맹’의 발기인으로 이사가 되었고, 1941년에는 ‘국민총력 조선연맹’ 이사 및 평의원이 되었다.

그는 학도지원병을 독려하는 글을 여러 차례 ‘매일신보’에 게재하여 조선 청년이 일본의 전장에 나가도록 선동했다. 전쟁말기인 1943년에는 <대의에 죽을 때 황민된 책무는 크다>라는 글을 실어 그의 친일은 절정에 달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바로 변신하여 조병옥 등과 함께 ‘연합군 환영 준비회’를 결성하고, 10월에는 군정청 한국인 고문단 의장이 된다. 이승만과의 정쟁에서 패한 그는 신익희 등과 민주국민당을 결성하여 최초의 야당을 만들었고 1951년에는 국회의 선출로 제2대 부통령에 취임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62년에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추서되었으나, 2018년 2월 대법원의 친일 행위에 대한 확정판결로 서훈이 취소되었다. 그는 ‘친일’, ‘친 군정’ 등 시류의 흐름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인촌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김상만 고택)과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그러한 연유로 인촌 집안에 대한 내력과 그들의 행적에 대해 남다르게 관심이 많았으며 그가 어렸을 적 살았다는 김상만 고택(국가민속문화재 150호)의 문화재 지정내력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1984년 1월14일 이 집을 국가민속문화재 지정했다. 문화재 지정 근거로는 ‘인촌 김성수 선생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으로, 주목받고 있는 초가집으로 부통령을 지낸 당대의 뛰어난 인물이 살았던 집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평가되고 있다’라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 초가집은 지난 1982년에 후손들에 의해 원형과 전혀 다른 현대식 초가집으로 리모델링 됐다. 전혀 문화재로 가치가 없음에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촌이 친일파로 최종 판단돼 보훈처에서 인촌과 관련된 동상 및 생가 등을 현충시설에 대한 지정 취소를 한 것과 관련, 문화재청의 한 주무관은 “친일파가 살았던 집이라고 해서 보존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필자의 귀를 의심케 했다.

그 주무관의 생각은 최근 성추행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지 말자고 하는 모순적 논리로 들렸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가옥들은 문자 그대로 고택(古宅), 옛날 집이다.

그러나 인촌이 어렸을 적 잠시 살았다는 이 집은 1982년에 완전히 새로 지어 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인촌이 어렸을 적 살았던 집이어서 문화재로서의 보존가치가 있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이유를 들어 지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초가집이 문화재로 등록될 수 있었던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마구잡이 행정을 틈타 어떤 편법이 작용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는다.

국가민속문화재란 역사성, 학술성, 의식주를 비롯해 교통, 생업, 교역, 신앙, 오락 등 민간생활과 관련된 풍속과 관습 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국가에서 지정해서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이중에서도 역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전문가들은 귀띔 했다.

그렇다면 부통령을 지낸 특정인의 집이라고 해서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정으로, 당연히 ‘지정 취소’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문화재로서의 보존가치가 전혀 없는 건물인데다,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된 인사가 어렸을 적에 잠시 기거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혈세를 들여 관리를 하고 있는 행위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이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돈 몇 푼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아까운 국민의 혈세를 이런 시설에 낭비하는 일은 허탈을 넘어 분노할 일이다.

이참에 부안 줄포의 생가, 즉 김상만 가옥의 국가민속문화재 해제와 함께 서울 성북구와 전북 고창군에 등재된 '인촌로' 등의 도로명칭도 폐기해야 옳다.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 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인촌이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도 파악하여 환수해야 한다. 아울러 문화재청의 안일한 업무태도 또한 친일파와 함께 청산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신영배 전주일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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