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자르기
꼬리자르기
  • 전주일보
  • 승인 2018.03.21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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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5일 검찰 소환조사에서 뇌물수수 등 혐의 대부분을 부인하면서 정치권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한 보수 야당 대표는 이 전 대통령 수사를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집권 여당은 "다스 소송비의 삼성 대납 의혹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뇌물수수혐의를 모두 부인했고, 있다 하더라도 실무선에서 이뤄진 일이라며 '꼬리자르기'로 일관했다"며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하려면 관련 사실을 성실히 고백하고 국민 앞에 참회하라"고 일갈했다. 

이명박 전대통령의 수사로부터 다시 등장한 '꼬리자르기'는 본디 구성원의 잘못으로 집단의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감추고 있던 잘못 따위가 드러나 집단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해당 구성원 일부에게 모든 책임을 지움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우리 사회에서 늘 있었던 일이다. 주로 정치권력의 상층부에서 횡행했다. 

꼬리자르기 하면 도마뱀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생명이 위급할 때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 목숨을 부지한다. 꼬리를 몇번이고 자를 수 있기도 하다. 다만, 한번 자르고 나면 다시 자란 뒤에야 또 자를 수 있다. 모든 도마뱀이 다 그런 게 아니고 큰 도마뱀이나 카멜레온의 꼬리는 한번 잘리면 다시 자라지 않는다. 도마뱀이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유전자와 동일한 세포재생 도구상자를 가졌다는 연구논문도 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꼬리만 자르고 도망가는 재주는 분명 놀라운 능력이다. 꼬리가 잘려도 재생한다는 점이 그렇고, 몸 일부가 잘려나갔는데도 출혈이나 감염으로 죽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그렇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도마뱀 꼬리자르기가 공룡 시대 보다 더 이전에 등장했다는 주장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팀이 2억8천900만년 전 페름기에 살았던 원시 파충류의 일종인 카프토리누스(Captorhinus)의 꼬리뼈 화석을 분석한 결과 꼬리뼈가 쉽게 부러질 수 있는 형태였다. 적당한 힘을 받으면 분리되는 꼬리뼈는 꼬리자르기 목적이 아니라면 설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꼬리는 생물에게 매우 유용하다. 다람쥐의 꼬리는 나무에 오를 때 균형과 방향을 잡아주고 거미원숭이나 카멜레온의 꼬리는 물건을 감아쥘 수 있을 뿐더러 운동성과 안정성이 커 다리 역할까지 한다. 방울뱀은 경고를 할 때, 악어는 먹이를 사냥할 때 꼬리를 사용한다. 꼬리가 생존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도마뱀은 꼬리라도 있지만 꼬리도 없으면서 꼬리자르기를 가장 잘 하는 게 인간이다. 더욱이 무한재생까지 가능하니 능력자 중의 능력자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 했다고 하니 그의 꼬리자르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또 재생의 끝은 어디인지 지켜볼 일이다. 도마뱀이 '형님' 하며 배우러 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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