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눈 내린 날 빙판길에서금요수필
전주일보  |  webmaster@jj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2.22  14:32:10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문 광 섭 / 수필가

새해 들어선 눈이 자주 내리니 겨울 같아서 좋다. 겨울의 느낌은 추위에서 비롯되지만, 하얀 눈이 내려야 겨울 맛이 나는 게 사실이다. 집 앞의 눈을 치워야 하고, 도로가 질퍽거리며 자동차가 거북이걸음을 할 때는 짜증이 날수도 있다. 하지만, 눈 내리는 날 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강아지도 꼬리를 흔드는 풍경에선 나이 든 사람도 똑같이 설레기 마련이다. 모두가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옛 어른들은 풍년이 들 징조고, 가뭄을 해소한다며 많이들 반기셨다. 눈은 겨울의 꽃이나 다름없다.

 

오후 내내 눈이 내렸다. 5시경 사무실을 나와 보니 눈발이 간간이 날리며 시가지가 설원으로 변해 있었다. 승용차가 도로에 진입하려는데, 줄지어 따라가는 자동차들 때문에 10여 분을 기다려야 했다. 마치 선적을 기다리는 자동차 대열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조급한 마음이 들거나 짜증이 나질 않았다. 자동차 유리창에 떨어져 쌓이다 녹는 눈을 보며 설원을 달리는 썰매에 오른 듯싶었다. 가까스로 거북이 마라톤 대열에 끼어들었으나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나아갈 수가 없었다. 평소에 15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인데 55분을 소비해 한전 전북지사 앞에서 C 선배를 내려드렸다. 그랬어도 그때까지는 선배와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탓에 지루한 줄 몰랐다.

 

 

차를 돌렸다. 집까지 거리는 약 2km. 왔던 길에 비하면 절반쯤 되는 거리다. 하지만, 지체가 더 심했다. 직장 퇴근시각과 겹친 탓이었다. 종합경기장 사거리가 빤히 보이는데도 하염없이 앉아 기다려야만 했다. 2시간 가까이 차 안에 머물다 보니, 두통이 일었고 정신이 몽롱해졌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스마트폰에 저장한 음악을 틀었으나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목이 타고 가슴이 답답하니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언젠가 어느 특강에서 강사가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시민의식을 꼬집어 ‘전쟁이 나면, 차 속에서 오도 가도 못 하고 지쳐서 죽을 거다.’라고 했던 말이 상기되었다. 자동차로 10분 거리를 1시간이나 주행하고서야 경기장 사거리를 벗어났다. 70년대 초, 술자리가 길어서 통금 위반으로 전주경찰서 유치장에 2시간가량 갇혀 있다가 풀려나오던 느낌과도 흡사했다.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는 표현이 적당하려니 싶다. 말동무의 소중함도 깨닫는 시간이었다.

 

저녁도 거르고 성당 레지오(LEGIO) 회합에 참석해 2시간 넘게 고생한 일을 말했더니, 회원 한 분이 친구한테 온 메시지를 읽어주며 위로해주었다. ‘평화동 현대 A 출발,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거리 6.3km, 시간 1시간 49분, 택시요금 23,100원’이란 내용이었다. 거리는 나와 비슷하고 시간에서 차이가 났는데, 내 경우는 J 대학과 J 대학병원에서 쏟아져 나온 차량 탓이려니 싶다. 오래전에 내 차로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폭설로 전주까지 14시간을 소비하며 고생한 일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지루함과 답답함에선 그렇지도 않았다. 속도를 계산해보면 서울에서 전주까지는 시속 15.7km지만, 전주 시내 경우는 시속 3km다. 고속도로에선 휴게소도 들리고 가족들이 있어서 견딜 수 있었으나, 시내에서 보낸 후반 1시간 15분은 심신이 고달프고 짜증스러운 시간이었다.

 

오늘 겪은 일들을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스카우트연맹 사무실을 갈 적만 해도 눈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령 눈이 내렸다 해도 평소보다 10여 분 늦었을 터다. 오늘 같은 일은 전주에 사는 60년 가운데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만이 겪은 일도 아니고, 전주 시내를 오갔던 수많은 운전자가 똑같이 겪었을 것이다. 유독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나이에서 온 체력저하도 한몫을 했지 싶다. 문득 지진이나 전쟁 같은 재난상황이 발생했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더 큰 혼란이 야기되었을 것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질서의식이 아직은 선진국수준에 이르지 못한 우리 교통문화가 언제 제대로 자리 잡힐까 걱정이 되었다. 남이 하니 나도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질서의식은 고쳐야할 악습이다.

 

앞으로 차량도 계속 증가할 것이다. 차량이 느는 만큼 질서의식도 늘어야 하는데, 되레 위반자만 늘고 있다. 신호등을 무시한 꼬리 물기, 원칙 없이 끼어들기, 양보할 줄 모르는 탓에 교통 체증 현상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주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선두에 버스와 택시 등 전문기사들의 수범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하여 일반 시민들은 대중교통 차량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미덕을 보여야 교통문화 선진국의 반열에 드는 문화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요 생활수단의 편리한 도구지만, 때로는 불행도 자초하는 폐단의 뒷면도 있음을 겪었다. 좋은 약도 반대급부의 해(害)가 따르는 것처럼.

문광섭/수필가

 

 

 

전주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05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98 (극동빌딩, 6층)  |  Tel 063-237-0095  |  Fax : 063-237-0091
등록번호 : 전라북도 가 00019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범규
Copyright © 2018 전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