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김여정, 펜스 그리고 문재인
평창, 김여정, 펜스 그리고 문재인
  • 전주일보
  • 승인 2018.02.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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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편집고문

9일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TV로 보았다. 여태 본 겨울 올림픽 가운데 가장 멋진 개막식이었다고 말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들뜬 음성과 함께 펼쳐지는 장관마다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저런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획과 역량에 감동하고,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즐거웠다.

더욱 감동적인 장면은 남북의 선수들이 한반도 깃발을 앞세우고 입장하던 장면이었다. 남북의 남녀 선수가 한반도 기를 함께 들고 입장할 때, 로열박스의 대통령과 북한의 김영남 수반, 그리고 각국 정상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쳤다. 그러나 미국의 펜스 부통령 일행은 자리에서 버티고 일어서지 않았다. 박수도 치지 않고 다른 데로 눈을 돌려 애써 바라보지 않았다. 세계 모든 나라가 남북한 동시 입장을 환영하고 평화의 조짐이라고 박수를 치는데, 명색이 70년 우방이라는 미국은 이 즐거운 퍼포먼스가 불쾌하다는 뜻만 보이고 있었다.

세계의 축제라는 겨울 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리는 걸 축하하러 왔으면 함께 즐거워하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어야 옳다. 그런데 오는 도중에 일본에 들러서 아베와 시시덕거리고 소곤소곤 뭔가 음모를 꾸미는 듯하더니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몽니를 부리기 시작했다.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를 하겠다고 엄포를 하고, 남북이 만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북한 김영남과 펜스를 대면시켜 만남을 주선하려 했지만, 펜스는 식전행사에서부터 만남을 피했고, 북한 대표단이 로열박스에 함께 자리한 일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남북 동시입장도 외면했다.

미국이 펜스를 보내서 평창 올림픽을 축하한다고 생각한 자체가 오해였다. 미국은 핵무기로 자국을 위협하는 북한을 어떤 방법이든 써서 혼을 내주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이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고, 올림픽에 끌어들여 단일팀까지 만드는 상황이 퍽 불쾌하다. 그래서 펜스를 보내서 훼방을 놓고, 미국은 대화에 응할 마음이 없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펜스는 10일 오후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트럼프는 미국 언론도 미치광이라고 칭하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부통령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편협하고 옹졸한 모습을 보인 건 퍽 실망스러웠다. 속으로 못마땅하더라도 남의 잔치에 왔으니, 주인의 뜻대로는 아니어도 형식적인 응대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펜스(Pence)는 영국의 화폐단위로 페니(Penny)의 복수가 펜스다. 2펜스는 우리 돈으로 28원쯤 된다. 그는 역시 28원 가치를 넘지 못하는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

태극기부대 꼴통보수들은 미국이나 일본을 종주국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결코 우리가 잘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은 언제든 기회가 되면 다시 한국에 쳐들어오고 싶고, 미국은 남북이 잘되어 중국과 어울리는 꼴을 보려하지 않는다. 철딱서니 없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미국과 일본에 매달려 아등바등 살아야하는 외교환경을 만든 덕분에 우리는 지금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핵무기를 갖춘 북한이 미국을 약 올려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놓고, 마지막 탈출구로 평창올림픽을 게기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마저 저들의 손을 뿌리쳐서는 안 된다. 어떻게든 그들을 대화의 마당으로 끌어내서 미국과의 충돌을 막고 최악의 경우 우리를 공격하는 건 막아야 한다. 미국은 트럼프가 당선되던 그 시점부터 몇 번이고 북한정권을 혼내주고 싶어 했다. 주한 미군이나 미국인들이 없었다면 진즉에 폭격을 감행했을 그들이다.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남북한의 전쟁이 나더라도 그건 그들의 일이라는 발언을 했다. 미국이 아니면 다른 나라야 죽건 말건 관계치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ICBM이 제 궤도에 진입하는 실험을 끝내고, 핵무기도 수소탄 개발까지 완성하자 정신이 바짝 들었다. 핵미사일을 미 본토까지 쏠 수 있게 된 마당에 한가하게 남의 나라 일이라고 방관할 수 없어서 이다. 그래서 몇 번이나 스텔스기를 동원하여 폭격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 한 번에 북한 지휘부와 핵시설을 없앨 자신이 생긴 듯하다. 이른바 ‘코피작전’이라는 웃지 못 할 전쟁을 궁리한 것이다.

설사 미국의 정밀타격으로 북한의 지휘부가 궤멸된다 해도 휴전선에 수만 발의 장사정포와 전후방의 미사일들은 즉시 공격을 시작할 것이고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쟁터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미국은 북한이 무릎을 꿇고 ‘잘못했습니다.’하고 빌기를 바라지만 여태 보아온 것처럼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김정은이 여동생을 특사로 보내서 문대통령을 초청한 속내는 당장의 어려움에서 숨통을 틔우고 핵을 가진 상태를 인정받는 핵보유국 지위일 터이지만, 미국은 용납하지 않고 핵 포기를 원한다. 그런 가운데 김정은의 초청을 받은 문대통령의 고심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했지만 실제 남북관계는 개선된 것이 없었고 환경이 달랐다. 지금 문대통령이 방북을 한다 해도 결정적인 성과를 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핵이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일이 풀리려면 김정은이 핵무기를 내려놓고 평화를 보장받는 길 뿐이다. 돌이켜보면 김정은이 미국을 사정거리 안에 두는 미사일 자랑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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