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
웬수 위해 차리는 밥상금요수필
전주일보  |  webmaster@jjilbo.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25  14:37:24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구글 msn
   
김 영 숙 / 수필가

어머니께서 무릎관절 수술을 받으신 지 4일째 되는 날이다. 다리는 통나무처럼 부어 퉁퉁 부어 며칠째 잠을 설치셨다. 당신 몸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오직 자식 위해 사셨던 어머니의 삶의 흔적이다. 어머니도 어지간히 세월의 파도를 탔나 보다. 손에, 얼굴에 주름의 골짜기가 깊다. 저 골짜기마다 보듬고 있을 애환은 또 얼마나 깊을까? 누워계신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울컥한다.

관절치료 전문병원 407호실에는 어머니 같은 환자 여섯 분이 누워계신다. 다르다면 간병인이다. 어머니의 간병인은 며느리인 나지만, 그분들은 평균연령 75세가 넘는 남편이라는 사실이다. 비싼 간병비라도 아껴서 자식에게 부담 덜어드리고 싶다는 분도 계시고,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것이 더 힘들어 간병을 자처했다는 분도 계신다. 식사시간이 되면 어르신들은 진풍경을 연출한다. 각자 부인들의 취향에 맞는 따뜻한 혹은, 시원한 물을 떠 식탁에 올려놓는 것을 시작으로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을 꺼내어 상을 차리고 수저를 챙기고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식판을 받아 부인 앞에 대령하신다. 그러는 남편들의 얼굴에서 싫은 기색은 없다.

“젊었을 때는 밥상 다 차려놔도 수저 없으면 밥 안자시던 양반이여”

내가 신기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으니 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이고 우리 집 양반은 어떻고. 그 추운 날 물지게 한번 안 져 주던 사람이랑게”이에 질세라 또 다른 어르신도 한마디 거드셨다.

“그래도 지금은 잘하시잖아요.”내가 참견을 하자 “긍게 그놈의 정이 웬수랑게”

내 시어머니도 식사하시다말고 한마디 거드셨지만, 더 이상은 말을 아끼셨다. 하지만 이미 그 뒷말은 내 시집오던 몇 해 전에 수차례 들었던 어머니의 넋두리다.

“느그 남편 아니었으면 나도 진작에 여기 안 살았어야. 사는 게 너무 퍽퍽해서 집 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 나갈 때 가더라도 내 자식들 배불리 먹이고 떠나야겠다싶어 돼지고기를 한 근 떠서 볶아줬는데 말여.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오물거리며 먹는 4남매의 입을 보고는 차마 발길이 안 떨어지더랑게. 그래서 쌌던 보따리를 도로 풀었지”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전설처럼 귓전을 맴돈다. 우리네 어머니의 삶 대부분이 그러했을 것이다. 고추보다 맵다는 내 편 하나 없는 시집살이에서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을 아주 보편적인 시집살이를 하셨다던 어느 분, 남편 마음 뜬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무덤덤하게 수십 년을 참고 살았다던 또 어느 분, 사흘이 멀다 하고 매 맞고도 자식 생각에 참고 견뎠다던 또 어느 분, 정이 웬수라고 했다. 그놈의 정이 뭔지 세월 속에 켜켜이 쌓여 이제는 가슴에 붙박이 되어서 털어내고 쓸어내도 가슴 한쪽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설마 그렇게 힘들게만 사셨을까마는 서운했던 일이 더 많이 기억되었나 보다.

“젊었을 때도 이리 다정다감하게 하시지 그러셨어요?”한 어르신께 여쭸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어디 그럴 수 있었간디. 그래도 맴속으론 늘 미안하고 그랬재.”어르신은 어설픈 미소를 짓더니 할머니 좋아하는 연속극 할 시간이라며 TV 채널을 돌리신다. 연속극을 보시면서도 또 한목소리다.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라며 꼭 당신 영감 같다며 미워하시더니만 암에 걸렸다는 아내를 보면서 결국 눈물을 흘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방 동정심으로 바뀌었다. 제아무리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도 가족은 세상에서 유일한 위안의 존재라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분들에게는 “사랑한다.”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오래도록 함께 살아오면서 삶의 흔적 하나하나가 이미 닮아있었으니까. 어쩌면 진정한 행복은 고난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생수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빚은 정(情), 연륜이란 바퀴 속을 구르는 웬수. 참 정겨운 말이다. 고운 정, 미운 정이 뒤엉켜 같이 산 세월의 무게만큼 연민이 정으로 승화된 말이다. 어르신들은 표현에 인색해 가슴속으로 삭이고 살다가 웬수 사이가 되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함부로 마음을 다 비치며 살다가 원수가 되기도 한다. 원수는 너무나 미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웬수는 앞에서는 구박해도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 잠시도 못 배기는 사람이다. 원수 때문에 칼을 간다면 웬수 때문에는 밥상을 차린단다. 우스갯말이지만 공감 가는 말이다. 살아가는 데는 밀고 당기는 적당한 지혜가 필요하다. 웬수가 되느냐, 원수가 되느냐는 각자 마음먹기에 달린 것임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젊어서는 마누라 속 엄청 썩였재. 저 사람 저리 아픈 것도 다 내 탓이고만. 7남매를 두고도 산후조리 한번 제대로 못 해주고 일만 부려 먹었으니 말여.”

드라마 삼매경에 빠진 할머니의 퉁퉁 부은 다리를 마사지하시는 어르신의 손이 떨렸다. 그런데도, 곁을 지켜준 아내가 고맙다는 말을 더는 아끼지 않으셨다. 통증이 덜한 것인지 어머니도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이 드셨다.

 

 

 

전주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오소리
공감합니다^^*
(2018-01-30 17:36:28)
항아
이러다 팬되겠어요. 경수필의 묘미를 잘살린듯 잟읽고갑니다
(2018-01-26 11:06:35)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2)
포토뉴스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05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198 (극동빌딩, 6층)  |  Tel 063-237-0095  |  Fax : 063-237-0091
등록번호 : 전라북도 가 00019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범규
Copyright © 2018 전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