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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18  14: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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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금 종 / 수필가

우리주변에는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여 아름다운 가치를 창조하거나 생활에 이로움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나무는 계절마다 변신하며 인간에게 여러 가지 뜻깊은 의미를 선사한다. 봄에는 예쁜 꽃을 피워 아름다운 감성을 자아내게 하고, 여름에는 짙은 신록으로 푸른 희망을 갖게 한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물들어 인생의 깊이를 생각하게 하고, 겨울이면 벌거숭이가 되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만 하는 인생의 허무를 깨우쳐 주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콩은 콩나물이 되기도 하고 두부가 되기도 하며 또는 메주가 되는 등 여러 가지 변신을 통해 우리의 입맛을 돋우게 하고 영양을 보충해 주며 인간의 건강을 돕고 돕는다. 그 중에서도 변신의 귀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메주가 아닌가 한다.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는 고치로 변신하여 번데기라는 우수한 영양과 예쁜 비단을 인간에게 선사한다면 메주는 고춧가루와 몸을 합쳐서 고추장으로, 소금물에 몸을 녹여 간장으로 거듭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된장의 모체가 되어 맛있는 밥상을 차리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12월의 첫 번째 주말, 우리 집에서도 여느 집과 같이 메주를 쑤었다. 모든 일이 때가 있듯 메주 쑤는 일도 때를 맞추어서 한다. 기온이 따뜻해도 안 되고 너무 추워도 아니 된다. 대개 기온이 약간 내려간 가을의 끝자락이 좋다. 이 시기에는 대륙성 고기압이 몰려와 건조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쾌적하다. 메주를 쑤어서 숙성시키는데 제격인 때가 바로 그 즈음이다.

먼저 노란색과 푸른색이 반반 섞인 콩을 물에 담가 휘휘 저으며 깨끗이 씻었다. 씻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불량콩들이 물 위로 떠오른다. 걷어내기가 아까웠으나 순정품의 메주를 만들고자 과감히 버렸다. 생장활동을 하는 시기에 병충해를 입었거나 영양실조로 낙오된 녀석들이리라. 우리 인생도 살아가는 동안 튼실한 열매를 거두는 삶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삶도 있을 진데 낙오되는 일이 없도록 허리끈을 동여 메야 하려니 싶다.

옥외에 설치된 가마솥에 콩을 넣고 잘 마른 삭정이 가지에 불을 지폈다. 땔감을 알맞게 넣어 가며 꺼지지 않게 강약을 조절하면서 때는 것이 콩을 삶는 노하우이다. 푸욱 삶아져야 방아도 잘 찧어지고, 메주도 예쁘게 만들 수 있고, 발효시키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동안 경험을 통해 터득한 진실이다. 삭정이는 새빨간 불꽃으로 산화하며 콩을 삶아내고, 한 줌의 재로 변신해 간다.

벌겋게 타 오르는 불꽃 속으로 콩 삶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콩을 삶는 날이면 으레 이글거리는 불 밑 잿 속에 넣었다가 구수하게 구어 진 고구마를 건네주곤 했다. 우리 형제들은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며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나면 온통 입 주변이 시커멓게 먹칠이 되었어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노릇노릇 삶아진 콩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어주기도 했다. 메주를 쑤는 날은 우리에겐 잔칫날이나 다름없고, 그렇게라도 자식들에게 군입거리를 주어 배를 채워 줄 수 있었던 어머니는 흐뭇하셨을 것이다.

푹 삶아진 콩을 꺼내 절구에 찧는 것도 예사 일이 아니다. 식기 전에 찧어야 쉽게 찧을 수 있고 또 찧을수록 찰 져서 절구에 뭉텅이로 붙으니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일은 때가 있고 순서가 있다는 말이 새삼 느껴진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힘을 써야 메주 빚기 알맞은 상태의 콩죽이 된다.

알맞게 찧어진 콩죽을 도마에 올려놓고 내리치기도하고, 도닥도닥 두드리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면서 메주를 만든다. 철없는 자식을 기르는 부모가 윽박지르고 달래기도 하듯이 메주의 모양을 만든 것이다. 그래야 크기도 알맞고 모양도 매끈한 메주로 거듭난다. 천년의 전통을 이어받은 도공의 솜씨로 빚는 청자만큼은 아니어도 꽤나 정성을 들여 빚어내고 보니 그럴 듯하다.

메주는 드디어 짚으로 얼개를 하여 동여매고 그물망에 넣었다.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이 살랑거리는 툇마루에 매달아 놓으니 의젓한 메주 7형제가 되었다. 콩은 우리의 손놀림에 의해 메주로 변신했고 우리에게 소중한 음식으로 화려하게 태어날 꿈을 영글게 하느라 매달린 것이다.

콩이 변신을 통해 구수하고 맛깔스런 음식으로 재탄생 하듯이 내 자신도 인생의 변곡점을 맞을 때 마다 나름대로 변신을 해가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변화와 모색을 통하여 삶을 조금씩 낳아지게 하느라 애를 썼지만 큰 성취를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 삶이란 반드시 노력한 만큼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크고 작은 변화에서 배운 진리다.

이제는 인생을 갈무리해야 할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비로소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나, 세상을 위해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무미건조한 반복을 거듭하는 생활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 새로운 변신이 필요하다. 콩과 같은 변신 말이다. 뭔가 가능성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도록 좋은 계획아래 내게 남은 모든 열정을 쏟아 부어 아름다운 결말을 짓고 싶다.

내가 나름대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많이 남지 않은 시간을 감안하여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보람 넘치는 일을 찾아야 하겠다. 하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는 훌륭한 말년을 보낼 수 있기를 염원한다. 그래서 세상 떠나는 날 “내 삶의 끝자락은 참 멋졌다.”라고 말하고 싶다.

백금종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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