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줄
생명줄
  • 전주일보
  • 승인 2018.01.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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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황 정 현 / 수필가

‘줄을 서다’를 말할 때 우리는 질서를 떠올린다. 어린 시절 마을에서, 학교에서, ‘앞으로 나란히’ 하며 줄을 섰던 기억이 있다. 질서를 지킨다는 게 무언지 모르면서도 그렇게 하는 모습이 우리 모두를 곧고 바르게 이끈다는 생각이 있었던 듯싶다. 그런 까닭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삶의 양식에 체화된 줄서기가 괴롭게 느껴진 적도 없다. 무질서에 관한 상념이 줄서기로 이루어지는 일상으로 정착되기까지 혼란스런 과도기가 있었다할지라도, 삶의 길에서 줄이란 언제나 중요한 가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성장과정에서 누구나 겪으며 배워 알게 되었다. 이제는 줄로 서는 질서는 물론 줄을 타는 재주도 지니게 되었다. 그 예로서 기타 줄도 타고 밧줄도 타고 생명줄도 타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세상의 삶에는 원만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위해 뭐든지 잘하면 좋을 거라는 갈망이 누구에게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런 출중한 줄타기를 아무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사당 줄타기 모습을 본 일이 있다. 한손에 부채를 들고 사뿐 사뿐 줄 위를 걷고, 뛰고, 앉고, 하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고 놀라운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줄타기를 하려면 저처럼 멋있고 화려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학처럼 날듯이 춤을 추면서 여유와 운치와 미소까지 던지며, 외줄을 예술적으로 넘나드는 경지가 정녕 사람이 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닌 듯싶었다.

그래서 그런지 줄만 잘 타면 삶의 시련을 덜 겪기도 하고, 성공의 가도를 밟아 나가는 방도도 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의 삶에서 줄을 서는 간단한 일 말고, 명예와 권력과 금전을 쥐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세속적 믿음과 이야기들을 누구나 듣고 산다. 그런 줄이란 질기고 좋을수록 오랜 시간 쓸모 있게 이용할만한 가치를 지녔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인연 줄을 당기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줄이 있음을 본다.

사랑의 줄타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그 흔들리는 줄에서 가슴조이는 흥분과 초조 그리고 긴장을 느끼며 즐기는 과정이 얼마나 많이 전개되는지 들은 바가 많다. 춘향과 이도령처럼 사랑의 줄이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의 줄이 끊어지는 안타까운 결말의 사연도 있다. 만남도 없이 일생동안 이어지는 정념의 줄로 강한 사랑의 표상이 있다면, 어떤 줄은 끊기기도 하고 불에 타서 없어지는 무상하고 변덕스런 심술 줄 같은 것도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세상을 현명하게 사는 데는 줄의 이용도가 좋아야 한다. 줄도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오랏줄에 묶이지 않도록 지혜롭고 정의롭게 사는 일도 있고, 취미와 여가의 활동으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은 낚싯줄을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언제나 시간에 쫓기어 제 분수를 챙기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똥줄이 타서 어떤 이음줄을 잡아야 할지 당황하기 일쑤인 것도 있다. 살아있는 것들은 자신의 목숨 줄을 당기는 질병과 치명적인 사태에 직면하는 일들이 많다. 위험하면 위험할수록 고비를 넘고자 자신을 지킬 생명줄을 찾는다. 종교에 대한 궁극적 믿음을 지닌 이들은 죽음에 이르러 잘못된 선택으로 엉터리 줄을 서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인연 줄에 매달려 살면서 가족형성 과정의 사연 많은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확장되어가는 사회생활의 틀 안에 우리는 개인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며 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줄에 매달려 살다가 줄이 끊어지면 우리는 절망하고 어쩔 줄 모르는 상황에 빠지기도 할 것이다. 더욱이 죽음에 이르러 생명줄을 붙잡아 줄 대상을 찾는 일도 선택과 집중의 논리가 등장한다. 하나님에게 의탁한 생명줄을 찾느냐 아니면 부처님 혹은 기타 자신의 영혼을 이끌 생명줄을 쥐기도 할 것이다. 어느 쪽이던 개인의 믿음과 확신에 근거한 생명줄 찾기여야 할 것이다.

결국 바깥 줄과 가운데 줄 그리고 끝줄의 차이로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다 간다. 인연 줄이 잘 엮이면 인생의 양식이 달라지는 세상에 산다는 뜻이다. 바깥 줄은 외부에서 습득하는 모든 학식과 지혜를 말함이고, 가운데 줄은 가족형성의 신실한 바탕으로 좋은 남편 좋은 아내와 자녀들의 화평과 융합의 삶을 말함이며, 끝줄은 그 모든 인생여로의 노력과 신념 등에 의해 형성된 재산이나 정신적 유산 그리고 종교적 자산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삶에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 세 가지가 하나로 일체화 되어 그 빛을 발하는 혼연일체의 예술적 삶이여야 비로소 진정한 생명줄을 잡고 살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생명줄을 잘 잡는 일은 두뇌 싸움이면서, 믿음과 확신이기도 하며, 지혜로운 생존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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