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애첩
남편의 애첩
  • 전주일보
  • 승인 2017.12.21 14: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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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영 숙 / 수필가

남편이 애첩을 집에 들였다. 그리고 나는 배알도 없이 그 애첩과 함께 산다. 비록 안방 차지는 내가 하고 있지만, 애첩보다 사는 환경은 훨씬 열악하다. 햇빛이 많이 들면 애첩이 사는 데 지장이 많다며 창문에 차광막을 쳐서 집안은 늘 어두컴컴하다.

더운 날에는 내가 쐬는 선풍기도 빼앗아 애첩에게 틀어주고 추운 날에는 온풍기를 틀어주는 것은 물론이요, 때맞춰 샤워도 해주며 눈치코치도 없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애정행각을 벌인다. 내게는 언제 저런 눈빛으로 바라봐줬던가? 울컥 질투가 날 때도 있지만, 불만을 토로 적은 없다. 애첩에 관심 둔 뒤로 남편의 속사포 잔소리가 현저히 줄었고 그를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면서 건강도 좋아졌기 때문이다. 애첩을 바라보는 남편의 눈빛이 너무 그윽해서 애먼 애첩에게 화풀이하듯 쏘아 보는 게 내 질투의 전부지만 이 또한 고고한 그의 그 자태에는 이길 재간이 없다.

남편의 애첩은 바로 난(蘭)이다. 우리 집 베란다는 난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의 애첩이 한두 분이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 난과의 인연은 남편이 지인으로부터 분양받은 산반이라는 이름을 가진 난을 집에 들이면서부터다. 그것을 시작으로 한 분 한 분 늘어나더니 이제는 무려 100여 분이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가 그 난이 그 난으로 보이는데 그들 나름대로 서열도 있고 이름도 있다. 다행인 것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난은 빼어난 미모를 가진 것이 아닌 것 같다. 한 촉밖에 없는 빈약하거나 꽃대를 달고 있는 것들, 그리고 적응을 못 하는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들에게 먼저 바람 잘 들고 햇빛 잘 가려진 곳에 자리를 내준다.

남편이 처음 난에 관심을 가지고 산에 다닐 때 섬진강 가에 사시는 이재복 시인과 자주 산행하곤 했다. 그분도 한때는 난에 미쳐서 마누라도 뒷전이요, 한두 촉에 천만 원이 호가하는 난을 사서 키운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시인이 며칠 출장을 간 사이 사모님이 실수로 뜨거운 물을 주는 바람에 난이 화상을 입고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버렸다고 했다. 사모님은 단순한 실수라고 하셨지만, 정말 실수였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라며 아직도 이 시인은 부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신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의 난 중에는 몸값이 많이 나가는 것은 몇 분 안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이 남편이 산에서 채취해 온 것들이다 보니 더 애지중지하는 것 같다. 나는 가끔 부부싸움이라도 할라치면 “저것들을 모두 창밖으로 던져버릴 거야.”하며 협박도 한다. 물론 말뿐이지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리 산 세월이 어언 10년이다. 나도 시나브로 미운 정이 들고 말았다. 바람이 찬 날, 남편이 부재 시에는 대신 창문을 닫아주기도 하고 더운 날에는 창문을 열어 바람을 쐬어주며 기분을 살피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남편이 하던 대로 선풍기도 틀어주고 온풍기도 틀어준다.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집에 손님이라도 오는 날에는 남편 대신 애첩을 소개하는 너그러움도 발휘한다. 잎으로 보는 복윤, 호, 중투, 서반, 사피 꽃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는 황화, 홍화, 백화, 주금화, 그리고 숏다리가 뭐가 좋으냐며 질투했던 단엽까지 꽤 많은 이름을 불러주면서 말이다.

어느 날 난은 단아한 모습으로 꽃망울을 터뜨렸다. 햇볕을 끌어안고 며칠의 산통을 거듭하더니 정초한 꽃을 피웠다. 비록 몸은 작지만, 가녀린 꽃에서 품어내는 향기는 은은하게 퍼져서 나마저 세파에 찌든 몸과 마음을 닦아낼 지경이다. 좁은 화분 속에서 난석에 몸을 의지한 채 저렇듯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낼 수 있는 건 순전히 남편의 애정 덕분이다.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 그리고 넉넉한 햇볕을 선물하며 사랑으로 돌봤기에 가능한 일이다. 비록 남편의 애첩이라며 놀리기는 했지만, 사실은 금란지교(金蘭之交)란 말이 잘 어울리는 사이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면 난향이 풍긴다고 했다. 그런 친구 하나만 있어도 행복한 사람 아닐까? 남편이 행복하면 나한테도 행복의 이스락 정도는 떨어질 테지. 그래서 나는 배알도 없이 그들의 관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로버트 엘리엇(Robert S. Eliot)은 “If you can not fight and if you can not flee, Flow”라고 했다. 즉 싸울 수도 없고 도망갈 수도 없으면 흐르는 대로 자신을 맡겨 흐르게 하라고 말이다.

단아한 몸속을 뚫어 꽃잎 여는 그 다소곳함과 새 신부처럼 속옷을 벗고 한 겹 한 겹 속살을 드러내는 저 은밀함과 정초하고 가녀린 몸에서 품어내는 향기의 도도함, 한번쯤은 적어도 한번쯤은 닮아도 괜찮은 일 아니겠는가?

 

출생지: 강원도 정선(90년 임실로 시집 옴)

약력: 07년 <月刊시사문단> 수필 등단

활동: 한국문인협회 회원, 전북문인협회 회원,

전북수필문학회 회원, 임실문인협회 회원,

現) 임실문인협회 사무국장

저서: 수필집 “사소한 아줌마의 소소한 행복 2010”

“섬진강 들꽃처럼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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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한줄 2018-01-23 16:13:20
발칙한 애첩같으니라구 ㅎㅎㅎ

효은 2017-12-22 11:06:35
여유가 있는 잔잔한 글이네요~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