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물꾸물한 세밑
꾸물꾸물한 세밑
  • 전주일보
  • 승인 2017.12.10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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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에
김 규 원 / 편집고문

중부지방에 눈이 내려 미끄러운데, 눈길에서도 참지 못한 조급증이 곳곳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내고 있는 모양이다. 언제쯤 넉넉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려는 지 답답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여기저기서 툭툭 터지는 악재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고 우울하게 한다. 지난주 내내 듣기 좋은 뉴스는 없고 ‘이래도 되는 거냐?’는 물음이 계속되었다. 영종도 낚싯배 침몰사건은 아직도 이 나라에서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전 불감증이 여전하다는 부끄러운 현실을 절감하게 했다. 사고 현장에 갈 구조선을 어선에 매어두고 허둥대다가 출동하는 광경이나, 큰 배나 작은 배나 조금도 조심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조급증으로 억울한 15인의 생목숨이 스러지는 일이 다시 발생했다는 게 부끄러웠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박근혜 전 대통령 무죄석방 서명운동본부’라는 해괴한 이름의 보수단체가 지난 토요일에 집회를 열었지만, 소수의 인원이 모여 깽판을 놓다가 흐지부지 끝났다는 보도다. 그들 외에도 ‘태극기운동 본부’ ‘박근혜 전 대통령 구명운동 총본부’ ‘태극기 행동본부’ 따위의 단체가 집회신고를 했는데, 역시 잘 안된 모양이다. 요즘은 그들에게 자금을 대주던 국정원이나 전경련, 기업 등이 모두 돈을 내놓지 않으니 집회가 잘 될 까닭이 없다.

대신, 그동안 의료보험 비급여로 떼돈을 벌어들이던 의사양반들께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 3만 명이나 모여서 문재인 케어를 반대한다고 소리소리를 쳤다는 소식이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치료만을 행한다’던 히포크라테스 선서 따위는 멀찌감치 던져버리고 ‘오로지 돈이 되는 치료만을’ 추구해온 이들에게 문재인 케어는 쥐약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웬만하면 수술을 권하고 일단 칼을 들이대고 보는 치료로 그동안 의사들은 잘 벌어서 잘 먹고 살았다. 생명을 살리고 건강을 추구하는 의사이기 보다는 목표수입을 올려서 더 많은 돈을 벌기를 소망하는 그들이 내지른 구호는 그들끼리만 절실했을 뿐, 국민들의 귀에는 어쩌면 ‘염병허네’이었을 것이다.

잘난 우리 국회에서는 지난주에 큰일을 해냈다. 2018년도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대형 법인들의 법인세를 현행22%에서 25%로 3%인상했다. 기업들은 추가로 내야할 세금이 2조원에 달한다고 엄살을 하고 있지만, 주요 국가들의 법인세는 그보다 높다는 분석이다. 최근에 각국에서 법인세를 내리는 추세인데 우리는 반대로 올렸다며, 앞으로 기업의 투자가 줄고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도 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그동안 정권이 법인세를 올리지 않아서 우리 세율이 높은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잘 버는 대기업이 세금을 더 내서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산안 통과와 법인세율 인상에 자한당이 큰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일부 꼴통보수들은 자한당이 일부러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퍼포먼스로 실질적으로는 예산안 통과와 세법 개정을 도왔다는 것이다. 이번 일을 보면서 자한당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말로는 시끄럽게 떠들지만, 그들도 국민의 눈이 무섭기 때문에 이번처럼 중요한 일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예산 통과가 안 되면 그 원망이 모두 자신들에게 쏠릴 것을 잘 알기에 슬그머니 피해버리는 ‘굼벵이가 둥그는 재주를 부리 듯’ 숨은 재간을 발휘한 것이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조금 더 사정이 복잡하다. 위험한 인물 트럼프가 또 한 번 깽판을 놓았다. 수천 년 종교전쟁의 빌미였고,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인정하는 선언을 해서 이슬람의 강력한 항의에 직면한 것이다. 유대인 사위의 편을 드느라 한 짓인지, 기어이 불집을 건드려 세계가 다시 테러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도록 하여 무기장사를 하려는 속셈인지 모르지만 그의 도박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북핵문제에서도 그는 몇 번이나 북한을 공격하여 한방에 날려버리고 싶어 안달하는 태도를 보였고, 이번 한미 공군 훈련에서도 그러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과정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태평한데, 세계의 시각은 곧 터질 화약고 쯤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렇기에 지난번 유엔주재 미국 대사에게 기자가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할 것인가를 물었고, 대사의 대답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그 일에 대하여 백악관 대변인도 앞으로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라고 얼버무렸다.

또, 주한 미국인을 철수 계획 따위의 말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걸 보면 분명히 우리만 무감각할 뿐, 세계는 지금 한반도 사태를 분화하는 활화산 정도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부 국가에서 평창올림픽에 참가를 유보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듯하다. 트럼프는 그저께 평창 올림픽에 자기 가족들을 보낼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의 말이나 행동이 도대체 신빙성이 없으니 세계가 불안해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장 왕이 조차도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뭔가 이상한 조짐이 있기에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 아닌가? 어쩌다가 김정은이라는 철부지와 트럼프라는 괴물을 만난 우리 한반도가 걱정이다. 우려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 주일을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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