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이 쉬워졌다.
김장이 쉬워졌다.
  • 전주일보
  • 승인 2017.12.0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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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여 화 / 수필가

요즘 들어 심통이 자주 온다. 무거운 걸. 들거나 바삐 걸어 어디를 간다거나 여하튼 마음이 조급하면 심통이 심상치 않다. 작년에는 이렇게 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올 여름 더 심해졌다. 여름날에 밭고랑에 엎어져 풀을 뽑을라. 치면 한참씩 심통이 와서 땀을 비 오듯 흘려야 하고 가만히 앉아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런 증상은 점점 더 심해져서 가을 들어 사무실로 올려야 하는 농산물 판매 상품을 도저히 내가 이층으로 올릴 수가 없었다. 남의 손을 빌리거나 누구에게 부탁하려면 미안해서 남편이 퇴근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올려주곤 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자주 나타나는 가슴의 통증에 불안하기 짝이 없다. 점점 일하기도 어려워지고 급기야 며칠 전에는 자다가 일어나 앉았다. 통증은 가슴에서부터 먹먹하게 왼쪽어깨로, 팔 쪽으로 퍼져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방사통이다. 남편을 깨워 어깨를 주무르고 30분 이상 통증이 지속되면 응급실로 가야 할 판국이다.

그렇게 잠 못 이루고 시달리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퉁퉁 부었다. 평소 다니던 병원에 가서 비상구급약을 받아오고 생각해보니 날짜를 받아둔 김장이 문제다. 당장에 큰 병원으로 가면 틀림없이 다시 시술을 해야 한다고 할 터인데 그러고 나면 지금보다도 더 움직일 수가 없을 터이니 성큼 병원으로 달려갈 수도 없다.

사람의 심리가 행여나 하다가 돌연사 한다고 주치의는 겁을 준다. 사실 그건 겁주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이 심통이 오면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더 초조하고 불안 하다. 그까짓 김장 안하면 되지 남편도 말린다. 걱정 말라고 김치 사다가 먹자고.

궁리 끝에 절임배추를 주문하였다. 배추농사를 지어놓고 절임배추를 주문하는 내게 옆집 형님은 ‘놉을 얻어서 하지 그러냐’ 고 하시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놉 얻기도 힘든 때이다. 힘든 김장은 선뜻 누가 와서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는다. 소금에 절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씻어야 하니, 그보다 밭에서 배추를 뽑아와 다듬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별수 없이 올해는 절임배추를 사기로 했다.

배추를 절여서 배달해주는 절임배추는 사실 편리하다. 양념만 준비하면 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양념 때문에라도 김장을 안 한다고 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아무리 많은 배추도 혼자서 다 절이고 새벽에 일어나 씻고 남편이 거들어만 주면 혼자 해 왔다. 이번에는 가슴 통증으로 내 몸이 우선이다 싶어서 쉽게 하기로 맘먹는다. 남편도 불안했는데 잘되었다고 거든다. 우리배추는 그 대신 다른 사람에게 팔든지 누굴 주든지 하라고 일찌감치 마음을 비운다. 따지고 보면 100킬로를 주문 하긴 했지만 우리가족만 먹을 것이면 덜해도 되련만 김장을 하면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들 때문에 그 정도 양은 주문을 해야 했다.

괜히 배추 뽑아다가 절이는 일은 엎어져서 하는 일이라 가슴 통증이 올까봐 불안해서였다. 한의사에게 문자를 보내서 증상을 말하고 약을 지어달라고 부탁한다. 가슴 통증에 달여서 먹을 약을 처방받아 당분간 힘든 일 하지 않고 약으로 심장을 달래보려는 것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우선 보름정도 달여서 먹으면 좋아질 것이라 했으니 다행이다. 처음엔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배추를 절이고 씻을 곳이 마땅치 않아 시골에 부탁하여 배추를 절여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제는 김장때 절임배추가 대세이다. 실제로 지난해 양념이 남아서 절임배추를 사서 써보니 아주 편리하고 좋았다.

노인들만 사는 가정이 늘면서 절임배추가 인기이다. 버무릴 때는 와서 도와 줄 사람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절임배추로 팔거나 아예 김장을 해주고 돈을 버는 방법도 있지만 사실 김장하는 일은 사람 잡는 일이다. 한 동네에 사는 친구가 해마다 남의 것까지 배추를 절여주는데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

해마다 자원봉사 김장을 할 때는 내가 청각이랑 마늘이랑 갈아다 주곤 했는데 올해는 그것도 못 할 거 같다. 양동이로 여러 개씩 퇴근하여 저녁 내내 몇 시간씩 갈곤 했는데 가슴을 구부리는 일은 할 수가 없으니 올해는 못한다고 말을 해야겠다. 남편도 절임배추 주문하길 잘했다고 위로해주니 그나마 마음이 편해진다. 우선은 약부터 달여서 착실히 먹어야지 내 몸부터 편안케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잘했다고 위안한다. 뭣이 중한가? 내 몸이 중하지, 절임배추를 주문해놓고 안심이 된다.

아마 내가 직장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배추농사를 지어 절여서 팔았을 거 같다. 내가 절임배추를 주문해 놓고 돌아보니 아득한 옛날 처음 분가해서 무를 골짜기 밭에 심었더니 낙엽송 잎이 날아와 털어내느라 고생했던 그 가을이 떠오른다. 농촌에서 사는 일은 뭐든 홀가분한 게 없다. 돈을 만들려면 몸을 고되게 움직이는 방법 밖에 없었다. 42년이 지난 올가을의 나는 조이는 가슴 쓸어내리며 절임배추를 주문하고 안도의 숨을 쉰다. 김장이 쉬워졌다.

김여화 / 소설가, 수필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 곁을 떠나게 되어 다음을 기약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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