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텃밭
어머니의 텃밭
  • 전주일보
  • 승인 2017.11.30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요수필
황 정 현/수필가

 농가에 딸린 텃밭은 농촌의 삶을 갈음하는 중요한 터전이다. 농촌의 하루 일과는 텃밭을 살펴보는 일로 시작하여 원거리 밭과 논으로 확대된다. 새벽에 일어나면 맨 먼저 텃밭에 눈길을 주어 작물들을 살피는 일상이 습관화되어 있다. 집 안팎에 텃밭이 있는 농가는 일거리의 편리성과 즐거움을 동시에 안을 수 있어서 좋다. 심고 가꾸는 일들의 고달픔을 넘어서는 즐거움이 텃밭에 있음을 나는 어릴 때부터 지켜보며 자랐다. 더구나 어머님의 나이 50대에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뒤 어머님의 텃밭 가꾸기는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었고, 고적함과 외로움을 잊는데 텃밭 농사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머님 홀로 처음 2년간 일꾼을 두고 밭농사와 논농사를 꾸려나가셨다. 그러나 힘에 부쳐 3년째부터 논은 임대료를 받고 소작을 주셨다. 그러나 텃밭만은 당신 손으로 꾸준히 가꾸며 경작하셨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시의 직장에서 근무하다 주말이 되면 시골집에 가곤 했다. 생활은 객지에서 했지만, 마음은 늘 고향의 어머님을 생각하며 텃밭에 가 있었다. 고향에 가면 어머님은 텃밭의 요모조모를 보여주시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거나 삽이나 괭이질 같은 힘든 일은 나에게 맡기셨다. 나는 기꺼이 힘닿는 대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밭을 만들어나갔다. 일은 쉽고 단조로웠지만 나는 서툰 일꾼에 불과했다.

농촌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농사일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기에 일의 뒷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했다. 어떤 날은 일이 고되다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님은 일을 그만하고 쉬라고 하거나, 내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사람을 써서 일을 마칠 것이라며 내 등을 밀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님 혼자서 그 일을 다 해내셨다고 한다. 나는 죄송한 심정이 되어 어머님에게 무리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늘 허리가 아프고 일거리가 질린다고 하시면서도 일을 놓지 않으셨다.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이 수북이 그 자태를 드러내면 어머님은 나에게 여기저기 손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밝히고 거둬들일 시기를 말씀하셨다. 외롭게 가꾸고 살폈던 채소들은 어머님 노고의 산물이었다.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옥수수며, 고추, 마늘, 부추, 더덕, 콩, 마, 등 여러 푸성귀들이 어머님 손길로 태어난 작품들이었다.

녹색화원에서 자란 채소들은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과 시골에 갈 때마다 밥상에 오르는 싱싱하고 영양가 넘치는 반찬이 되었다. 재래된장에 풀려나온 아욱국이며 상추쌈, 고추장에 한 입으로 듬뿍 찍어 먹는 마늘과 생고추 등이 아늑한 입맛 사냥감으로 최적이었다. 아내와 아이들도 이 맛에 물들어 식탁의 향연에 기꺼이 동참했다. 우적우적 씹는 입속의 저작과정을 간단히 마치고 술술 넘겨도 탈이 없는 텃밭의 푸른 보물들이었다. 어머님의 정성을 들여다보며 그 반찬들을 즐기던 그때야말로 행복한 삶이었다.

내가 직장 정년퇴직 1년을 남겨두었을 때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텃밭은 푸른빛을 잃었다. 텃밭을 돌보지 않고 무심히 방치하였다. 무성한 잡초가 시도 때도 없이 자랐고, 반듯했던 밭이랑이 무질서의 틀에서 채소밭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어머님이 작고하신지 2, 3년간은 텃밭을 관리하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이다. 어머님을 잃은 상심으로 허탈해 했던 것 외에 개인적으로 분주했던 시절이었기에, 내 마음이 텃밭에 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텃밭을 방치한 채 놔둘 수도 없었다. 어머님이 어머님 방식대로 채소를 키웠듯이 나는 내 방식으로 텃밭을 가꾸리라 마음을 굳혔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이것저것을 심고 가꾸었다. 그러나 처음엔 씨앗을 뿌리는 것이 좋은지, 모종을 사다 심는 것이 좋은 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남이 하는 그대로 시늉만 내면 될 줄 알았다. 결과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다. 아내의 야박한(?) 평가에 따르면 한마디로 ‘웃기는 텃밭 농사’라는 것이었다. 웃기는 작품으로 식용하려는 나의 용감한 시도가 다행히 아내의 배척을 당하지 않고 밥상위에 오른 것이 대견했다. 볼품없는 상추와 마늘 그리고 아욱 등이 아내의 요리솜씨를 거쳐 나의 식탁에 오르자 나는 조금 감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머님의 손길을 거쳐 입에 익었던 반찬에 어찌 비길 수 있겠는가. 언제 한 번이라도 어머님의 손맛이 어떻게 익어 가는지, 고춧가루, 간장, 기름 등의 배분이 어떤지 잠깐이나마 눈여겨 본 적이 있었던가. 늘 맛있게 먹고 즐기는 것만 관심의 대상이었지, 음식의 요리법과 내용을 물어본 바가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그것이 너무 아쉬웠다.

아내가 정성껏 차려내는 반찬이지만, 어머니의 손맛과 같을 수는 없었다. 이제 어머니가 갈무리해두었던 간장이나 고추장, 된장 등이 바닥을 드러냈다. 홀로 옛집에 머물며 식사를 할 때마다, 아득하고 슬프고 그리운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도 어머니가 가꾸셨던 텃밭이 푸르고 무성했던 때가 입맛과 살맛을 돋우었고, 풍성한 삶의 꽃이 피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철이 덜 들었나싶다.

황정현/수필가,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