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신호등
내 인생의 신호등
  • 전주일보
  • 승인 2017.11.2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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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박 깜박 신호가 바뀔 무렵 왜 그리 긴장되는지, 뭐가 그리 급해서 처음엔 긴장감에서 나중엔 비장함으로 바뀐다. 빨리 달려야지! 언제 들어올지 모른 빨간불을 피하기 위해 속력을 높인다. 긴장 속에서 속력을 높여 달리는데 앞차는 또 왜 그리 느리게 달리는지... 답이라도 해 주는 듯 앞차의 뒷 유리창에 초보운전이라 쓰여 있다.

초보운전자로 확인된 순간 속도를 낮춘다. 따라오던 뒤차가 답답했는지 클랙슨을 울리며 추월한다. 추월했던 그 차가 얼마 안가 다음 신호등에서 빨간불에 잡혀 있다.그 차를 보는 순간 그렇게 바삐 달리 더만 별거 아니었다는 듯 쓴웃음을 짓게 한다.결국 같은 지점에서 멈춰 다시 신호를 기다리게 될 걸.... 신호등은 일정한 간격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예고 없이 바뀌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내가 집에서 출발하여 근무하는 곳까지는 10여 킬로미터 거리에 열두 개의 신호등이 서 있다. 운수 좋은 날은 서너 번, 그렇지 않은 날은 대여섯 번의 빨간불 신호를 받는다. 어떤 이는 기다리다 못해 빨간불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언젠가 도로 주행은 흐름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운전을 잘 하는 것은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도로 주행도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파란불이 켜지는 날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술술 풀리는 날이라면, 빨간 불이 켜지는 날은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터지고 어려운 일이 닥쳐왔던 날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파란불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 같다.

파란불을 기다리는 동안 나에게만 유난히 불행의 빨간 불만 켜져 있는 듯 느껴진다이런저런 생각 속에서 좋았던 일들이 생각나 저절로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잘 풀리지 않았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간다. 이렇게 얼마 안 되는 시간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감정은 무엇일까?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몇 번의 신호등이 바뀌었을까 물음표를 찍으며 심호흡을 한다.빨간 불이 켜지기 전에 몇 번에 거쳐 노란불도 들어왔을지도 모르는데, 파란불이 들어오면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 내게 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4월에 받았던 자기변화 교육시간에 인생 곡선 그리기 시간이 떠올랐다.교육 첫날 자기변화를 시도하기 전 단계로 서로가 어색한 첫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었다 교육생들을 분임조로 나누어 놓고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게 될 날들에 대해서 인생 곡선을 그리게 했다. 가로 측에 연령대별로, 세로 측에는 아래쪽에 슬프고 힘들었던 일부터 위로 올라가며 기쁘고 좋았던 일을 표시했다. 조원들은 돌아가며 그려놓은 인생 곡선을 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이 있기까지 어떤 이는 살면서 참 힘들었다는 가족얘기, 학비를 자신이 벌며 다녔다는 얘기, 직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일들,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성공담 등  인생 이야기들이었다.

각자의 인생 곡선에 담긴 이야기를 자기 일인 양 공감하며 듣다 보니 어느새 내 차례가 왔다. 곡선에 담긴 사연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얘기는 생략하고 간단하게 소개했다. 20십대에 직장을 잡고 기분이 좋았던 일, 30대에 아이들 키우며 그런대로 좋았던 일로 파란 불이 켜졌던 시절, 40대에 어려움이 닥쳐오며 빨간불이 들어왔던 것, 50대에 차차 회복해 가는 과정이라고 끝을 맺었다.

조원들은 인생 곡선의 높은 지점에서는 즐겁고 좋았던 일들을 상기된 표정과 높은 톤의 음성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급속하게 떨어지는 지점에서는 어려운 일들을 회상하듯 슬픔이 서린 떨림의 목소리였다. 두어 시간 동안 인생 곡선 그리기 수업이 끝나갈 무렵에 나는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도 나에겐 살아갈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 그래서 인생 곡선을 그릴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은  파란 불에 너무 연연하지 않고 초보운전 시절을 되돌아보듯, 천천히 여유롭게, 함께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이야기 만들어가는 인생 곡선을 그리고 싶다. 가을이 겨울에게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주듯, 인생도 흐름 따라 조급해하지 않고 제 속도에 맞추어 사는 것이 잘사는 인생이 아닐까?

12월의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신호등을 상상해 본다

정명숙 / 고창군 성송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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