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낙엽
비와 낙엽
  • 전주일보
  • 승인 2017.10.12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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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김 고 운 / 수필가

소리 없이 창문에 흐르는 빗물을 바라보다가 가을비의 정취에 이끌려 비 내리는 아침에 동네공원길을 걸었다. 낙엽들은 이미 속삭임을 멈추고 비에 젖어 추레하게 움츠려 있다. 나무 밑을 지나다가 비에 젖은 낙엽 한 장이 우산 위를 굴러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나도 모르게 이끌려 나온 빗길의 산책은 빗소리조차 숨어들어 나른하고 적막하다.

우산 앞에 붉고 노랗게 물들어 떨어진 벚나무 잎은 비에 젖은 채 풀죽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비에 젖어 떨어지는 낙엽은 지난여름 내내 꿈꾸었을 멋진 마지막비행조차 이루지 못하고 ‘툭’하고 멋없이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비는 낙엽의 오랜 소망을 앗아버리는 비정함을 저지르고도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여전히 조용히 내리고 있다.

 

봄에 찬란하게 벚꽃을 피운 가지에서 잎으로 돋아나 여름의 무성함을 지나 마침내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떨어져 내리는 낙엽이다. 흙에서 와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잎이 바라는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어쩌면 떨어지는 그날 붉고 노란색으로 치장하고 저 먼 나라에서부터 찾아온 산들바람에 실려 한들한들, 살랑살랑 날려 내려가는 멋진 비행을 하는 일이 아닐까? 바람을 따라 비행하면서 바람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먼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며 날아 내리는 멋진 순간을 꿈꾸어 왔을 것이다.

그리하여 땅바닥에 내려와서는 감도는 바람에 이리저리 구르며 사각사각하는 목소리로 지나가는 개미에게, 찬바람에 기운을 잃어 안간힘을 쓰는 잠자리에게 바람이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하며 다음해에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함께 흙의 나라로 떠나는 친구 낙엽들과 사그락사그락 속삭이며 더 힘차고 고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내년을 기약하지 않았을까?

어쩌다가 하필이면 비가 내리는 날에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낙엽은 오랜 시간 꿈꾸었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비에 젖어 땅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내리는 비는 저로 인하여 낙엽의 꿈이 좌절된 일을 알지 못하는 지 세상을 적시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한 장 낙엽이 내린 비 때문에 지녔던 꿈을 상실하듯, 내 삶에서도 그런 사소한 일들로 빼앗기고 좌절하는 일들이 수 없이 반복되었다. 꿈을 위해 진력해야할 고3 때에 군사쿠데타로 집안이 풍비박산되어 부모를 도와 생계를 꾸려가야 했고, 장가들어 첫딸을 얻은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선천성기형심장으로 판명되어 당시 의술로는 어찌할 수 없어 끝내 딸을 먼저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산다는 일은 나름 최선을 다하는 길 뿐, 소망과 현실은 너무 큰 거리와 깊이를 사이에 두고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항상 아픔과 불운이 나를 향하고 있었는지 그 까닭을 알기위해 한때는 역(易)을 공부하기도 했다. 사는 일이 죽음의 길을 걷는 일임을 뒤늦게 거니채고 마음을 추스르기 까지, 신(神)이 있다면 찾아가 따지고 대들고 싶을 만큼 억울했던 적도 있다.

시련은 겹쳐 온다더니, 인생의 황금기인 50대 후반에 아내가 불치의 병을 얻어 16년을 간병인으로 살게 되는 최악의 운명을 만났었다. 차츰 중환자로 변해가는 아내 옆에서 간병인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 당시에는 그게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사명감뿐이었다. 처절한 투병을 곁에서 지키는 아픔은 오래지 않아 습관이 되고 삶의 목표가 되었다.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리고 말라비틀어진 낙엽 같던 아내는 저지난해 10월 스무날에 날 두고 가뭇없이 떠났다.

삶의 목표이던 아내가 떠나자 내 인생은 의미를 잊었다. 왜 사는지, 무얼 위해 살아있는지 생각해도 알 수 없었고 세상은 그저 텅 빈 공간이 되었다. 그녀를 간병하기 위해 살았던 16년 삶이 의미를 잃고 퇴색하여 비 내리는 날의 낙엽처럼 맥없이 떨어져 흐트러져버렸다. 그 길다고 하면 긴 시간의 의미를 상실이라는 아픔에 모두 빼앗겨 내게 돌아온 건 공허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아야할 명분이나 실익이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생각도 했다. 의료보험에서 건강검진 통지가 와도 한 차례도 가지 않았다. 아픈 데가 없으니 검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차라리 병이 온다면 맞이하여 별 의미 없는 삶을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삶의 의지를 거의 상실한 사나마나한 잉여시간을 체감했다.

 

시련 끝에 얻은 결론은 그 모든 잘못이 내게서 비롯된 것, 운명도 사소한 동기도 모두 나로 인한 업보였음을 알았다. 아쉽고 허탈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방황하고 번민한 끝에 내게 아직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음을 생각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부모님이 내게 주신 글쓰기 솜씨와 뭔가를 파고드는 천착의 근성을 빌미로 끌어 댔다. 내가 더 살아야할 구실을 만들어 내는 일은 비겁했지만, 현실이었으므로 피할 도리가 없었다. 오늘도 이 가슴 저미는 아픔을 적어가며 한 편으로는 시답잖은 시(詩)를 배우느라 안간힘이다.

비에 젖은 낙엽의 모습에서 떠나간 아내의 아픔이 내게 전이되어 고통스러웠다. 다만, 내 삶의 끝자락은 제발 비에 젖지 않아서 설악의 단풍잎처럼 멋진 비행을 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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