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시대의 공직자
국민주권시대의 공직자
  • 김규원
  • 승인 2017.07.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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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규 원 / 편집고문

수은주가 연일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으며 전국을 불가마로 만들고 있다. 거기다 국지성 호우가 동시 다발로 퍼부어 수해가 나는 등 여소야대의 국회만큼이나 날씨가 변덕스럽고 예측불가하다. 어지간히 깐족거리며 새 정부를 애타게 하던 정부조직법과 추가경정예산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마침내 확정되었다.

야당 티를 내느라 온갖 생떼 같은 물고 늘어지기를 계속하던 야당은, 국민의당이 선거 때 증거조작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형세 불리를 절감하고 뒤로 물러서서 협조모드로 돌아서게 되자 야3당의 공조가 깨졌다. 생떼를 주도하던 자유한국당은 끝까지 몽니를 부리며 청와대의 당대표 회동에도 고춧가루를 뿌려보았지만, 전혀 실효가 없었다.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주권시대’를 선포했다. “국민이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이자 청치의 실질적 주체로 등장하는 시대를 의미한다.”는 청와대의 설명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을 고스란히 살리고자 애쓴 흔적이 거기에 있었다. 야당이 비아냥거리는 코스프레가 아닌 실질적인 국민주권시대를 열겠다는 말이었다.

국민주권시대는 과거 정권에서 ‘국가구성원으로서 국민의 역할’의 개념으로 ‘정부 시책에 호응하고 따르는 것이 국민의 덕목’이라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국민 개개인이 권력의 생성과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새로운 ‘국민’의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다양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염원했던 정의와 균형을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뜻을 반영하고 실천하는 민주국가를 국민의 손으로 만들어나가자는 말이다.

과거 정부가 국민을 통치 대상으로 삼아 통치철학 따위를 설파하며 거들먹거리던 태도와 180도 다른 새 정부는 국정지표부터 달랐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비전아래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라는 5대 국정지표를 설정하고 ‘국민주권주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필두로 20대 국정전략과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국민주권시대가 구호로만 존재하지 않고 실제로 국민이 주인으로 대접받기 위해서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사람들이 공무원과 선출직 공직자들이다.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시대를 열고자 하지만, 공직자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주인인 ‘국민의 부림을 받는 일꾼’이 아니라, ‘국민을 이끌거나 지배하는 목민관(牧民官)’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공무원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그런 군림하는 습성이 배어있음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도내의 한 자치단체에는 자기들끼리 한 해 동안 일을 잘한(?) 공무원을 선정하여 ‘목민관 상’이라는 걸 준다. 이 시대에 목민관이라는 용어를 버젓이 쓰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과연 국민주권시대라는 말이 받아들여 질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목민이라는 단어는 과거 왕조시대에 관리가 백성을 이끌고 가르치며 다스리던 시대에 쓰던 용어다. 군민들을 잘 다스렸다고 상을 주는 그들의 의식세계에서 과연 국민주권시대가 열릴 수 있겠는가.

정부가 아무리 좋은 시책을 내놓고 시행을 하려해도 그 시책을 시행하는 공직자들의 태도가 되어있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말썽이 되었던 충청북도 도의원들이 수해발생 다음날 외유를 떠난 사건도 선출직 공직자인 지방의원들의 특권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주민들이 뽑아준 대표라는 도의원이 지역에 참담한 수해가 발생하여 수백 명 이재민이 발생하였는데, 예약된 일이라는 구실로 여행을 떠날 수 있던 배짱은 이해부득이다.

지방의원만 문제가 아니다. 국민주권의 위임을 받아 나라의 법을 만들고 정부의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국회의원들 또한 과연 국민의 대표로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고 주권자인 국민들은 그들의 행동을 조금도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급한 추경안을 45일이 지나서야 통과시켜준 일은 배짱을 넘어 주인의 당부를 아예 무시한 처사라고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26명은 추경안 표결에 불참하여 국회가 성원이 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가 간신히 통과되었다.

야당이 표결에 응하여 성원이 될 것이라고 믿고 딴 짓을 한 그 자체가 안이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려는 순간에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린 행위는 간절하게 바라는 척만 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인가? 13명 의원들은 공적인 해외출장으로 부득이했다고 인정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성의 없는 의정활동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라고 매도되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공직자들은 지금 국민주권의 시대에 주인인 국민들이 이런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데이터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귀족 장화신기’의 멋진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아직도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류석춘을 혁신위원장으로 지명한 홍 대표의 행동, 증거조작으로 대선 판을 엎으려했던 정당의 어물쩍 넘어가려는 행태도 국민주권은 모두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갈수록 깐깐해지는 주인의 눈초리에 둔감한 머슴은 이번 임기가 끝나면 절대 다시 불러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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