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속에 돋아난 추억 한 움큼
장맛비 속에 돋아난 추억 한 움큼
  • 전주일보
  • 승인 2017.07.2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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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 화 / 수필가

가물어서 곡식이 다 버렸지 싶을 때 비가 내렸다.  새벽에 장맛비가 우르릉 쾅쾅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내렸다. 오늘 아침에 토요일 진료를 봐 주는 병원을 가기위해 서둘렀지만 9시가 넘어서야 챙기고 일어나 오수로 갔다. 빗줄기가 후두둑거리며 부딪히는 유리창의 화음을 음악처럼 즐기며 오수에 도착하여 어머니 링거를 꽂아 놓고 나니 두 시간쯤 시간이 남아돈다.

병원에서 나와 마트엘 갔다. 뭐든 관촌의 우리 동네보다는 조금 값이 헐한 것들이 많아 기회가 될 때마다 이용하기도 하지만, 프로그램 관리자로 몇 년 동안 함께 일했던 영숙이가 과일코너를 맡고 있어 자주 들른다.

10원이라도 싸게 주려고 애쓰는 게 고마워 오수엘 가면 꼭 들러서 이것저것 장을 봐 온다. 오늘은 열무와 강냉이를 사려고 갔는데 두 물건 다 품절이었다. 곧 상품이 신선한 걸로 도착한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기로 했다. 빗줄기는 여전히 마구 쏟아지다가 긋기를 반복하고 있다.

어머니의 주사가 끝나 돌아오려고 할 때, 마침 동생도 주사를 맞는다며 병원에서 주사기를 꽂고 있었다. 어머니와 같이 밥을 먹어야하는데 주사 땜에 나설 수 없다고 점심값을 억지로 쥐어주는 동생을 두고 우린 먼저 병원을 나서서 마트에 들러서 열무를 샀다. 열무 값이 올랐다며 미안해하는 후배를 보면서 열무 석단과 강냉이 스무 통 한 묶음을 들고 차에 올랐다.

고온에 오이랑 토마토랑 철철 썩어 내리고 있는 판에 비가 무섭게 내려 열무 밭도 결딴이 날 터이므로, 이번 비가 그치고 나면 아마 열무 값은 오늘 준 값에 두 배로 오를 거란 생각을 하면서 석단을 산 건 퍽 오진일이라고 돌아오면서 몇 번이나 생각했다.

강냉이를 벗겨서 솥에 쪘다. 구수한 강냉이 익는 냄새에 뚜껑을 열어보니 알록달록한 강냉이가 한가득 솥에서 웃고 있었다. 남편은 강냉이 냄새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잠시 그친 빗속으로 나갔다. 어제 못 다 심은 콩을 심는단다. 오늘 쉬고 내일 심으라는 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철벅거리며 나갔다.

솥 속의 강냉이는 바둑배기다. 내 어린 시절 바둑배기 강냉이는 값도 더 쳐 주었다. 장재 넘어 촛대봉 아래 산등성이 하나를 모두 강냉이를 심어놓고 대낮에도 강냉이를 따 가는 도둑을 지키기 위해 열세 살 어린 내가 초막에 앉아 강냉이 밭을 지키던 50년 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오늘처럼 장맛비가 내리면 부모님은 산두 밭을 매거나, 고추밭을 매고 강냉이 밭 지키는 일은 어린 내가 그나마 일꾼 한 몫을 했다.

사실 어린애였지만 강냉일 지키는 일은 충분했다. 왜냐면 강냉이는 대낮에 따건 야심한 밤에 따건 강냉이자루를 젖힐 때 나는 ‘삐거덕’ 소리가 멀리서도 잘 들리기 때문에 나는 소리만 치면 된다. “엄마 누가 강냉이 따고 있어” 그 말 한마디에 부모님은 한달음에 강냉이 밭으로 달려오셨기 때문이다.

 

빗줄기는 오후 참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도 여전하다. 남편은 다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들어온다. 오전에도 두 번이나 나갔다 들어왔다 했다면서 제발 가만 좀 있으라고 잔소리를 해대는 데도 듣지 않고 저렇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오늘 내일 못 다심은 콩을 심어야 하는데 애통터진다고 한다.

예전에는 나락이 새끼 치는 요즘이면 논을 매야 했다. 비옷을 입고도 비를 맞으며 종일 일하다가 추워서 덜덜 떨리면 그제야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럴 때면 집에 와서 감자 썰어넣고 수제비를 떼었다. 그땐 수제비가 어찌 그렇게도 맛났던지……. 오늘 문득 내리는 비를 보며 강냉이를 입에 물고 있으려니 옛 생각이 더 난다. 그 시절의 여름은 참 힘들고 버거웠다.

요새 나는 콩 심는 일도 거들지 않고 있다. 왜냐면 엎어져서 콩을 심을라치면 심장이 터질 듯 힘들다. 혹시라도 심장이 터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아예 나서지 않는다. 작년에 심장에 기구를 넣고 나서 올 들어서는 참 여러 가지로 어렵다. 그래서 “내가 내 몸 아껴야지” 하는 생각으로 밭에 나가지 않는다. 내가 콩 심는 일을 도울 수 없으니 남편이 더 조바심을 하는 가 싶다.

장맛비는 하루 종일 퍼붓다가 그치기를 반복한다. 강냉이는 찰지고 맛난 바둑배기로 빛깔도 예쁘다. 어릴 때 우리 집 강냉이는 내 팔뚝보다 길었는데 오늘 강냉이는 작달막하다. 그래도 맛이 쫄깃해서 좋다.

그 시절에는 이른 새벽에 어머니가 강냉이를 쪄서 100개씩 세어 자루에 담는 소리를 자장가로 들었다. 강냉이 익는 구수한 냄새를 코끝에 맡으며 일어나곤 했는데 꽁보리밥 아침을 먹는 대신 강냉이로 배를 채우던 그 어렵던 시절의 여름이 떠오른다.

너무 먹어서 물릴 법 했지만 물리지 않던 강냉이. 한꺼번에 여남은 개씩 먹어도 맛이 있었다. 지금도 강냉이는 한꺼번에 여러 자루를 먹어치운다. 배가 너무 부르다고 하면서도 강냉이는 입에서 떼지 않는다. 다른 것은 소화가 안 되네 어쩌네 하면서도 강냉이는 단번에 열개를 먹어도 탈이 없다.

장맛비속에 알록달록 바둑배기 강냉이가 한가득 웃는 가운데, 내 가슴에 한 움큼 추억이 돋아 싹을 틔우고 쑥쑥 자라서 어느새 수염 고스러진 옥수수로 익는다. 김여화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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