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와 범죄
유전자와 범죄
  • 전주일보
  • 승인 2017.07.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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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은 따로 있는가, 무엇이 인간을 악으로 만드는가'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범죄 유전자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세계적인 법정신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 교수는 죄수 300여명을 1년 이상 인터뷰한 '아주 정상적인 악'(2012년 번역)을 통해 학계와 대중의 의구심에 답했다. 생물학·신학·유전자 연구·정신병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악을 추적했다.

할러 교수는 유전과 범죄의 연관성에 대한 대중의 막연한 두려움, 범죄자는 보통사람과 다르리라는 생각에 죽비를 날린다. 살인 범죄자를 분석한 결과 악이 어떤 특별한 원인을 가진 것이 아니라, 힘겨운 생활, 불행한 어린 시절, 나쁜 본보기, 과열된 감정, 상처 받은 경험 등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한 대학교수의 연구과제를 놓고 SNS와 오프라인에서 논쟁이 뜨겁다. 조선대 윤일홍(경찰행정학과)교수의 ‘청소년 범죄와 유전자-환경 상호작용에 관한 연구’를 두고서다. 중학생 800명을 표본 추출해 구강세포를 채취,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를 5년 동안 조사할 예정이다.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2억 3천750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윤 교수는 '범죄예방, 양형결정, 교정 및 교화' 등에 활용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청소년을, 유전자를 근거로 범죄를 '예방하고 교화'하겠다는 '선의'가 왠지 섬뜩하게 다가온다. 범죄자도 아닌 일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연구과제에 국가가 연구비를 지원한다는 점, 정신의학·유전학·심리학·사회학 등 다방면의 학제간 연구가 필요한 분야를 특정분야 전문가가 주도하는 것 등등에 관한 우려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찌가 유대인 학살에 활용한 우생학 뿐아니라 뇌과학 등 과학이 인종이나 젠더 등을 구획하고 배제하는 폭력으로 활용되온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로 퓰리처 상을 받은 싯다르타 무케르지도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에서 이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의사인 무케르지는 삼촌·사촌이 조현병 환자로, 집안 전체가 고통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유전자의 정체와 연구의 역사, 오늘날 유전자 연구 동향, 사례 등을 두루 살폈다. 무케르지는 책에서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소련의 인종청소 등의 사례를 통해 유전자 논리의 위험성을 갈파한다.

연구주제를 둘러싼 논쟁은 연구의 자유와 학문윤리가 충돌하는 지점이지만 해당교수가 인터뷰를 거절해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전문가집단의 쏟아지는 우려가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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