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꽃
  • 전주일보
  • 승인 2017.06.1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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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 화 / 수필가

우리 동네는 이제야 아카시아가 꽃을 피웠다. 다른 곳은 질 때인데 우리 동네는 이제 시작인 것이다. 오래전 라디오 드라마 주제가는 “아카시아 향기가 휘날리면 왜 그런지 슬퍼져. 못 잊을 사랑의 그림자 꽃잎은 알아줄까?” 라는 노래가 슬픈 내 기억처럼 새겨진 노래다. 그 내용이 아련한 첫사랑 그것도 아카시아 꽃이 필 때가 되어 첫사랑을 기억하며 애잔 한 마음을 표현 하는데 노래로 위로 받는다. 주인공이 슬픈 그늘이 생기면 노래는 잔잔한 여운으로 깔리며 사람 마을을 후비곤 했다.

그 연속극처럼 올해도 아카시아 꽃이 피었다. 지난해 아카시아 꽃송이를 따서 발효액을 담았다가 올해에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다. 해서 올해는 밭으로 지나가는 묵정밭 옆에 그 아카시나무를 잘라서라도 꽃을 따야겠다고 맘먹었는데 마침 오늘이 그 날이다. 오래전에 아카시아 껌을 선전 하던 문구도 떠오른다.

달콤한 향기가 넘치는 아카시아 길가에서 꽃송이를 따고 있다. 모처럼 한가로운 날이다. 나뭇가지를 잘라서 길가에 수북이 쌓아놓고 질펀하게 앉아서 꽃송이가 붙은 잔가지를 따는 일인데 서서 애쓰는 것보다 한결 수월하고 능률도 오르고 해서 좋다. 두어 시간 땄는데 20여키로나 된다. 그걸 집에 가져와서 다시 꽃송이만을 주르르 훑어서 꽃만 따로 하여 살짝 쪄서 채반에 담아 그늘에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놓았다. 생것일 때는 붉은 색이 나던 꽃받침이 찜 솥에 쪘더니 푸른색으로 변했다.

그런데 꽃을 따다보니 꽃받침이 불그스름한 것이 있는가 하면 아예 푸른색인 것도 있다. 꽃받침이 푸른 것은 나무에 가시가 없어 다루기가 용이하다. 아, 이런 것도 있구나. 남편과 나는 푸른빛의 꽃받침이 있는 나무를 찾아 표시를 해 두기로 했다. 다행히 그 나무에 몇 송이 푸른 꽃송이가 남아있다. 그 씨를 받아서 따로 모를 부어 묘목이 되면 나무를 밭 가장자리에 심자는 뜻이다. 아카시 나무가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냥 묵정밭에 난 것 가운데에도 꽃송이가 이렇게 전혀 다른 것이 있는 줄은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꽃받침이 푸른 것을 찾아보니 검색되지 않는다. 참 묘하기도 하지 어떻게 가시도 덜하고 꽃도 좀 풍성해 보이는 종류가 있었던 것일까? 꽃도 꽃이지만 색다른 종자를 발견한 것이 더 특별한 일이다. 가을에 반드시 남은 송이가 열매를 맺으면 씨를 수확하여 밭 가장자리 한쪽에 씨를 모종으로 뿌려보겠다고 다짐 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노란색, 분홍색, 아카시아 꽃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같은 하얀색인데 꽃받침이 다른 건 처음 보았다. 남아있는 꽃송이가 열매를 맺는다면 그 숫자가 수월찮이 될 거 같다. 그걸 씨를 뿌려서 밭 가장자리에 철조망을 쳐 놓은 주변에 심는다면 멧돼지 퇴치에도 좋을 거 같다.

따놓은 꽃 가운데 우리가 쓸 것은 씻어서 설탕에 절이고 오후에 딴 두 소쿠리는 아침 출근을 하면서 비닐봉지에 담았다. 친구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친구들은 모두 얼마나 좋아하는지 다 발효액으로 만들어서 음식용으로 쓰겠다고 한다. 서울로 보내고 읍내의 친구와 내가 날마다 점심을 얻어먹는 친구까지 세 집에 나눠주었다. 내가 작년에 만든 것을 올해 사용 해보니 과연 장조림도 짠지도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본래 아카시아나무는 재질도 단단하고 밀식을 하면 그 키가 크게 자란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라고 하는데, 한국전쟁 후 우리의 산야가 헐벗었기에 속성수인 아카시아나무를 많이 심어 사방사업용으로 심어 산을 푸르게 하는 데 좋았다고 한다.

아카시아나무의 꽃은 약용으로 유명한데, ‘미래의 항생제’라고 부를 만큼 항생제 내성으로 항생제가 듣지 않는 환자에게 쓰면 염증 개선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는 아카시아 꽃에 함유된 성분의 하나인 ‘로비닌’의 약리작용 때문인데, 이뇨작용과 해독작용이 있고, 치료가 어려운 중이염에도 잘 듣는 다고 한다. 또 아카시아 꽃에는 아카세틴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이 성분이 소염작용과 이뇨작용, 이담작용을 하며 세포괴사를 중지시키는 효과도 있어 앞으로 천연 치료제로서 개발될 미래의 약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때,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경제수 식재에 지장목이 되어 천대받던 아카시아가 미래의 약용식물이 될 수 있다니, 생각해보면 나무 팔자도 시간문제 인 듯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하게 하는 반면,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주는 역할도 한다는 걸 실감한 하루였다.

오늘 아카시아 꽃을 만지며 보낸 시간 내내 향기에 취해 지낼 수 있어서 좋았고, 귀하고 훌륭한 약효까지 있는데다, 요리의 맛을 품격 있게 해주는 꽃 엑기스를 장만해서 행복했다. 옆에서 열심히 수발해준 내 짝이 고맙다.

김여화/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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