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규제법
번개탄규제법
  • 전주일보
  • 승인 2017.05.2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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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전문이다. 세상의 하찮은 것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는 도발이 멋지다. 연탄은 1970~80년대 자신의 몸뚱이를 다 태우며 뜨끈뜨끈한 아랫목과 서민들의 밥한 끼, 국한 술을 만들어주던 고마운 존재다. 다 탄 연탄재는 얼어붙은 골목길 사람들의 미끄럼 방지를 위해 최후까지 희생한다. 그래 '함부로 대하는 당신(발로 차는 사람)보다 더 고귀한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암시다. 그런 연탄과 단짝으로 붙어 다니는 또 다른 존재가 불을 붙여주는 '번개탄’(정확한 명칭은 착화탄) 이다.

번개탄의 주재료는 톱밥이다. 공기를 차단한 채 톱밥을 태워 탄화시킨다. 그런 뒤 분말상이 잘 붙도록 적당한 접착제를 첨가해 반죽시켜 틀을 만든다. 사용 시에 불을 붙이기 쉽도록 바닥에 일정량의 질산칼륨을 바르기만 하면 시판되는 번개탄이 된다. 질산칼륨은 한번 불이 붙으면 연소가 계속 진행되는 성냥불 같은 점화원이다. 계속 탈 수 있는 물질인 탄화된 톱밥에 일정 시간 산소를 공급해 준다. 산소를 빼앗기는 과정에서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이를 흡입을 하면 혈액 속 헤모글로빈과 결합, 산소 공급을 막아 심한경우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싼 가격과 치사율 탓에 종종 자살에 이용되기도 한다.

번개탄이 '자살 쏘시개'라는 누명과 함께 규제 대상으로 전락할 조짐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자살 방지를 위해 '번개탄 규제 법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올 하반기부터 번개탄 구매를 제한하고 포장지에 자살 예방 문구를 넣겠다는 것이다. 또 자물쇠가 달린 보관함에 번개탄을 넣고 사용 목적을 묻고 판매하거나 어디에서 쓸 건지 그 장소도 확인한 뒤에 팔게 하겠다는 의도다. 번개탄이 일상 생활용품으로 분류돼 구매하기 편하고, 고통도 덜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꾸어 자살도구화 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번개탄은 현재도 달동네 서민들이 겨울에 연탄을 사용하는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이다. 마트에서 구매 용도를 묻고 인터넷 구입을 막는 식의 규제는 자칫 서민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한다. 또 어려운 영세 번개탄 생산업체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한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에서 벗어나겠다는 정부의지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정신의학과 복지 제도적 접근과 함께 사회 구성원 간 관계회복을 위한 정부의 자살예방책이 먼저다. 연탄재 함부로 차듯, 정부가 자살률 증가의 책임을 힘없는 번개탄에게 만 지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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