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짠한 어버이날
마음 짠한 어버이날
  • 전주일보
  • 승인 2017.05.18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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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버이날을 보냈습니다. 이 나라의 많은 자식들이 어버이날을 기렸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용돈을 드리고, 다른 이는 선물을 올리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식사를 대접하였거나 편지나 전화로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였을 것입니다. 방법이야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를 올리는 마음은 한결 같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한 해에 한번쯤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은공에 감사하는 자식들이 있기에 가정은 화목하고 사회가 지탱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에게도 자식이 셋이나 있습니다. 이제는 모두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직장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 하는 사회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 자식들이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우리 부부에게 사랑을 전해 왔습니다. 두 딸은 건강식품으로 그들의 마음을 나타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머리가 하얗게 되고 주름살이 깊어지는 부모의 모습이 안쓰러웠던 가 봅니다. 거르지 말고 잘 챙겨먹으라는 말이 전화기 저편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아들 녀석은 저녁에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더군요. 정성이 크고 작음을 떠나 어버이날을 기억하고 부모를 챙기는 그 마음이 갸륵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식들한테 대접받는 부모의 위치에 있을뿐더러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기에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해야 할 입장입니다. 저에게는 구순을 훌쩍 넘긴 어머님이 계십니다. 기력이 쇠진하고 활동하시기가 불편해서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향집에 계셨는데 날이 갈수록 거동은커녕 손발하나 움직이기도 힘들어 하셔서 그곳으로 가시게 한 것입니다. 자식으로서 잘 모시지 못한데 대해 죄책감이 있지만 수발을 제대로 못해 드릴 형편이니 이나마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8일 어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준비해 간 다과를 한 방에 같이 계신 어머니들께 나누어 드리고, 가슴에는 빨간 카네이션 꽃도 달아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버이 은혜에 감사하는 노래도 불렀습니다. 나는 목을 추스르고 감정을 잡아서 불렀지만, 듣는 이들은 아무 감흥이 없는지 실내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오히려 노래를 부르는 내가 더 민망해 지기도 했습니다. 몇 분 어머니들은 그래도 오늘의 의미를 아는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뻔히 바라보는데, 내 어머니를 비롯한 몇 분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꽃은 왜 달아드리는지, 노래는 왜 부르는지 전혀 느끼지 못하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어버이날이라 찾아왔다는 아내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는 그 모습은 여전했습니다.

몇 해 전까지도 어버이날에 꽃이라도 달아드리면 큰아들이 사왔다고 함박웃음을 짓던 분입니다. 어쩌다 막내딸이 값싼 스웨터라도 하나 사 드리면 동네방네 자랑하며 돌아다니신 분입니다. 이제는 기뻐하시는 내색은 고사하고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으니, 세월은 이처럼 무서운 것이고, 알아보시던 때에 조금이라도 더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일이 가슴을 치게 합니다.

손발을 주물러 드리고, 등을 두드리면서 한 동안 이런저런 말을 해드렸습니다. 그 동안 어느 자식이 다녀갔는지, 점심시간에 무엇을 드셨는지 기억의 저편에 잠자고 있는 파편들을 끄집어내려 애셨습니다. 망각의 늪에 빠져있던 사연들이 되살아나는 듯 눈을 깜박이며 조금은 알겠다는 표정입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바깥나들이도 했습니다. 눈부신 오월의 햇살이 포근하게 내리쬐는 공원길에서 어머니는 환한 얼굴로 좋아하시는 듯 했습니다. 신록이 무성해진 공원에는 약동하는 젊음과 푸른 희망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저런 푸름과 젊음이 어머니의 생을 지나고 내 삶에서도 이제 지나가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음을 생각하며 삶이란 그렇게 아래로 끝없이 물려 내려가는 것임을 생각했습니다.

아쉬운 시간이 지나고 헤어져야할 순간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온기가 없고 거친 손마디가 마른 솔가지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손은 새벽에 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절구에 통보리를 찧어 어린 자식들의 배를 채웠던 손이요, 농사철이면 밤낮없이 호미질을 해 댔던 손이고, 긴긴 겨울밤 배틀 위에서 당신의 고단한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으신 손입니다. 자식들의 생일날 아침이면 정화수를 앞에 놓고 지극 정성으로 빌었던 손이기도 하지요.

어머니의 곁을 물러나면서 올해는 이렇게나마 어버이날을 자식과 함께 보낼 수 있지만 내년에는 어떤 어버이날이 될지 모른다는 경망한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습니다.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 할 수는 없지만, 저런 모습이나마 그 자리에 계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옛날처럼 함박웃음을 짓던 그 모습을 다시 뵐 수 있으면 좋으련만……, 병실 창 너머로 보이는 서쪽하늘의 노을빛이 점점 더 붉어지는 가 했더니 어느새 어둠발이 깃들고 있었습니다.

백금종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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