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에 오르며
모악산에 오르며
  • 전주일보
  • 승인 2017.05.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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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모악산에 오를 때마다 산의 정기와 푸르른 생명력에 경이로움을 느끼곤 한다. 사시사철 다른 색채의 옷을 입는 산이기에 싫증도 나지 않는다. 40년 전부터 오르기 시작한 모악산은 그동안 변함없이 거기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에서 끊임없이 등산 환경을 개선하여 정상까지 오르기가 한결 좋아졌다. 원래 있던 등산로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각종 덮개를 씌웠고, 인공 계단을 설치하여 예전에 비하면 신선놀음이라 할 만큼 오르고 내리는 걸음 조건들이 얼마나 수월해졌는지 모른다.

산에 오르는 일은 누구나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고 몸을 시험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땀을 흘리고 길가의 풀들과 나무들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신체적 반응은 부차적인 소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심신의 균형과 율동에 따라 산의 포근한 품을 얼마나 가까이 확인할 수 있느냐이다. 마음의 보약을 먹는 것이고 산행에 걸맞는 몸의 원기를 담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이 인간에게 베풀어주는 유익성에 대해 진부하게 여러 가지로 나열하는 것은 객설에 불과하다.

산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自然)이라면, 스스로 그러하다는 뜻에 맞는 산의 자연이야말로 완전한 사랑이다. 그 사랑도 오로지 주기만하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애정으로 그냥 와서 누리고 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사랑이다. 그런데 실제로 종교적 성심에 가름할 만큼 열심히 산을 오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등산은 건강을 위한 최상의 살판을 만드는 첩경이기에 그렇고, 그 등산에 온몸을 바치는 열정으로 삶의 질곡을 헤쳐 나가는 힘을 얻기에 마냥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산은 마침내 열심히 오르던 사람의 주검까지 자신의 품에 안아주어 영원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항간의 일부 사람들이나 글 쓰는 이들이 거나한 취중 방담과 글로 산이란 정복의 대상이라고 호언한다. 백두산과 금강산을 정복하고 더 나아가 후지산과 에베레스트 산까지 발아래 정복한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산은 경외의 대상이며 의지처이고 평지 삶의 세계에서 맛볼 수 없는 별천지의 경이로움이 가득한 곳이다. 인간의 힘으로 모두 기를 수 없는 나무와 초본 식물의 본향이며 수많은 동물들의 서식처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세언世諺으로 가볍게 오가는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가령 조그마한 개미나 벌레가 어떤 사람의 발밑에서 기어올라 혼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머리에 닿은 다음 ‘나는 이 사람을 정복했노라’ 라고 크게 외치면, 그게 받아들일만한 외침인가. 이런 개미나 벌레 같은 미물과 사람의 크기에 비교하여, 사람을 산에 비한다면 더 작은 세균 정도의 크기에 불과할 터인데 정복이라니.

정복에 관한 사전적 해석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무력으로 쳐서 정벌하여 복종을 하게 함, 둘째 어려운 일을 해내어 자신의 뜻이나 목적을 이룸, 셋째 질병 따위를 완치할 수 있게 됨.

우리가 해석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사항은 두 번째 어려운 일을 해내어 자신의 뜻이나 목적을 이룸에 있는데, 단순한 행동범위에 드는 등산을 두고 정복을 말하지 않는다. 어려운 한자나 영어를 정복했다는 따위의 학문적 성취를 말할 때 정복을 말해야 옳다고 본다. 종종 정복의 잘못된 적용은 첫 번의 ‘무력으로 쳐서 복종을 하게 함’을 쓰는데 있다. 보통 정복전쟁을 말할 때 징기스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역사가 들추어진다. 그들은 항거하면 철저히 살육하고 복속하면 관대한 교류를 허용하며 역사의 정복전쟁을 진행했다. 그런 정복 전쟁과 산에 올라 정상에 닿는 행위의 정복과는 쓰임의 차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산을 정복했다는 말 대신에 우리는 ‘정상에 닿다’ 혹은 ‘정상에 발을 내딛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정상에 이르러 세상의 풍진 속의 복잡한 번뇌를 잊고 호연지기를 기르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 삶의 희망을 품는다. 이로써 산의 풍정에 깊은 고마움과 감사의 정념을 가져야 한다. ‘멜러리’의 말처럼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가듯이 우리도 모악산이 거기에 있으니 가는 것이며, 정복이 아니라 우리의 심신이 요구하는 절실한 부름 때문에 정상에 닿도록 발을 내딛는 것이다. 산을 정복한다고 말하기엔 우리는 산보다 너무 작고 짧은 생애의 생명들이다. 모악산은 우리들의 영산이며 문전옥답을 적시는 물의 젖줄을 내리는 어머니 산이다. 정복이 아니라 그 품에 기대어 산의 정기와 푸르른 생명력을 온몸으로 전해 받는 수혜자로 우리는 모악산에 오를 뿐이다.

황정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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