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와 고금(古今)을 통털어 봄날을 소재로 한 노래나 시(詩)와 글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새싹이 움트는 의미도 있지만 오랜 시간 겨울 삭풍에 시달려온 가슴을 활짝 펼 해방감에서 그럴게다. 필자의 이 조각 글도 그 많은 음유에 더해지는 한 표현이리라.
흔히 봄은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같은 열기로 시작한다. 거리의 옷차림이 한층 가벼워지면 '진정 봄이 왔나보다'하는 감흥이 절로 생겨난다. 매화 또한 봄의 징조를 알린다. 겨울 끝자락의 서슬퍼런 매서운 추위에 굴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며 향기를 팔지않던 결기로서 그렇다. 산수유가 지척으로 피어나는 춘삼월. 흰 눈처럼 분분한 꽃잎으로 떨어지는 벚꽃 화사한 사월. 그리고 '계절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은 신록의 5월. 모두가 오는 봄을 기꺼이 맞이하고, 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순간 순간들이다. 왕소군은 봄이 왔으되 봄같지 않음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으로 흘겨댔다. 또 시인 TS. 엘리엇은 꽃지는 봄날 저녁의 스산함을 '잔인한 달'이라는 구절로 달래었다.
꿈이 꿈인 것을 알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마찬가지로 물이 흘러가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물에서 벗어나야 한다. 봄의 소중함을 알게되는 것도 봄이 지나가고 난 뒤에라야 가능하다. 봄의 한 복판에서는 그 무거움을 느끼지 못할테니까.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더니 어느덧 잎들의 푸르름이 짙어간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을 전후해 이런 정치, 저런 정치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촛불을 든 시민혁명에 편승한 눈치 정치도 잇달아 선 보였다. 그런가 하면 질 낮고 짝퉁이나 다름없는 온갖 사이비 정치 또한 무시로 모습을 드러내 고개를 절레절레하게 만들었다.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 저질 막장정치도 어김없이 재연됐다.
지난 겨울 내내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체험했던 아픔과 고통, 절박함을 위무받는가 했는데 다시 5월이다. 아울러 오늘은 대선일이다. 일명 '장미대선'이다. 날카로운 가시를 감춘 장미처럼 때가 이르면 이 못된 정치판을 징치하라는 은유를 담고있을지 모른다. 이제 대한민국의 새로운 운명을 결정해야할 때다. 일찌기 플라톤은 경고했다. "정치를 외면하면 그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으로 돌아온다"라고. 이번 대선의 의미가 곧추 세워질 수 있도록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천부의 권리(투표권)를 행사하는게 당연하다. 대한민국을 후퇴시킬지 발전시킬지는 오래된 미래, 플라톤의 경고가 한 참고 사유다. 봄날의 투표가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