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감(六感)
육감(六感)
  • 전주일보
  • 승인 2017.04.1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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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광섭 / 수필가

사람들은 흔히 육감이라는 말을 잘 쓴다. 육감은 무엇이며 어디서 나오는 걸까? 오감(五感)이야 귀, 눈, 코, 혀, 피부 등 오관(五官)에서 인식되는 것들이 뇌신경에 전달되어 생기는 느낌이나 감정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육감은 오관 이외의 감각으로 제육감(第六感)인 예감이나 영감(靈感)이라 했다. 또 백과사전에서는, 분석적인 사고(思考)에 의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정신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나는 살면서 이 육감에 의한 판단이 신묘하게 들어맞았던 적이 많았다.

오늘은 전북원로스카우트 정례모임 날이었다. 평소대로 오전 8시를 전후하여 참석여부를 확인했다. 한데, L 선생님(88세)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30분 간격으로 손전화기나 집으로 각각 세 차례씩 걸었으니, 여섯 번이나 전화를 건 셈이다. 다른 땐 부인이라도 받았는데, 오늘은 전혀 연락이 되질 않았다. 혹시, 입원하셨나? 아니면 작고하셨나? 육감이 돌아가신 쪽으로 스쳤다.

선생님은 지난달 모임에도 나오셨다. 내 차로 집까지 모셔드렸는데, 내리면서 평소와는 다르게 나에게 진중하게 고맙다는 뜻을 보이셨다.

“총무님, 고맙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싣고 갔다가, 다시 집까지 데려다 주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하셨다. 다시 못 볼 사람에게 말하듯 그런 느낌이 내게 닿았다. L선생님도 아마 어떤 육감으로 내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났지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L선생님이 돌아가셨나?’ 하는 판단도 그런 직관에 기인한 것이다. 나의 육감은 적중했다. 고교 은사님이신 W 교장선생님을 모시러 갔더니, 오늘 새벽 4시에 L선생님이 작고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두 분은 동갑에다 같은 학교에 계시는 등 60여 년 지기(知己)라 하시며 말씀을 잇지 못했다.

나는 육감을 중시하는 편이다. 아주 오래 전인 1962년 초여름에 겪은 일 때문이다.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어머니가 잠시 계시던 목포로 내려갔었다. 당시에는 여름이 되면, 드럼통을 잘라 만든 화덕에 제재소에서 나오는 죽데기로 불을 때어 밥을 지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씩 제재소로 죽데기를 사러 갔다. 처음 길인데, 제재소에 가보니 죽데기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대략 50Kg 정도의 죽데기 한 묶음을 들고 나와야 하는데, 쌓아놓은 죽데기가 무너질 것만 같은 육감이 들어서 되돌아왔었다. 이 무슨 신통력인가? 내가 돌아 간 뒤에 죽데기 쌓은 더미가 무너져 사람이 크게 다쳤다고 했다. 나는 평소에도 조금이라도 예감이 좋지 않으면, 매사를 조심하고 삼가왔다. 덕분에 여러 차례 화(禍)를 면할 수 있었다.

미국의 천재 과학자 ‘토마스 에디슨(1847~1931)’이 발명한 축음기, 백열전등, 영사기 등 발명특허 수만 1,000종이 넘는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다. 에디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에 의하여 이루어진다.”어릴 적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에디슨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영감에서 꾸준히 찾으며 쉼 없이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육감은 때로 순간적인 기지(機智)나 행운으로도 작용한다. 1978년 8월, 총무처에서 시행한 5급(사무관) 공개경쟁시험 2차에서다. 버스에서 내려 시험장으로 들어가면서 행정법 논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행정벌과 대집행’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논제에 대한 논술 개요를 살펴본 뒤 자리에 앉았다. 시험이 시작되어 논술 제목을 적은 종이가 칠판에 붙었다. 50점짜리 논제 1문항과 10점짜리 약술(略述) 5개 문항이 나왔는데, 바로 50점짜리 문항의 논제가 육감으로 짚었던 것과 유사했었다. 덕분에 좋은 점수로 5급 승진시험에 합격했다.

돌이켜 보면, 육감에 의한 판단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행운도 얻었지만, 가볍게 여기다가 크게 낭패하는 일도 몇 차례 있었다. 나의 성정이 독하질 못하고 인정에 빠진 탓이었다. 어느 땐 어머니의 완숙한 육감적 경험으로 나에게 신신 당부를 하셨음에도 설마하며 간과하다가 일을 크게 그르친 적도 있었다. 매사를 쉽게 생각하는 버릇이 덜컥덜컥 실수로 이어진 것이다.

육감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퍽 유익하고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매사에 육감을 동원하려 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왜냐면, 어느 상황이 발생하거나 결정적 순간에 전광석화처럼 뇌리를 스치는 영감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육감이 발휘되는 경우는 내게 축적된 정신에너지와 외부요인이 서로 부딪히면서 평소와 다른 자극으로 감지되는 게 아닌가 싶다. /문광섭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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